▼참석자▼
이용훈(李容勳)전 대법관(위원장)
이종왕(李鍾旺) 변호사
김영석(金永錫)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양창순(楊昌順) 신경정신과 전문의
-국내 신문의 인권침해 실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용훈위원장 = 언론이 우선 추구해야 할 것은 ‘공익’입니다. 따라서 공직자 등 ‘공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비판해야 하지만 일반인에 대해서는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거꾸로인 것 같아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익명성 보장 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쉽게 보도하는 반면, 공인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경우에는 오히려 익명 처리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보도 태도를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김영석위원 = 여기에는 무엇보다 시대의 변화상이 깔려 있습니다. 개인의 초상권 문제를 예로 들자면 최근에는 인터넷에 의한 개인 인권침해가 훨씬 심각하고 광범위합니다. 신문의 경우 인권침해 문제는 그동안의 잘못된 언론 관행에서 주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정치중심, 권위주의적 사회의식이 지배하던 시기를 넘어 최근 10년여 동안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이른바 ‘공익’ 혹은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개인권익이 상대적으로 무시되던 종래의 경향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지요.
▽양창순위원 = 언론의 보도과정에서 사생활이 무절제하게 노출되는 현상을 볼 때마다 ‘어디까지가 공인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공익을 위한 객관적 사실’ 보도를 언론의 본령이라 할 때 그 위배 사례는 많다고 봅니다. 특히 대형사건이 터져나왔을 때 온통 난리를 피우는 듯하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또 다른 화제로 이동하면서, 그 기사에 관여된 사람들의 인권은 배려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이종왕위원 = 보도로 인한 인권침해는 1차적으로 언론의 지나친 ‘속보경쟁’ 심리에서 일어난다고 봅니다.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면 사실관계가 왜곡돼 당사자에 피해를 주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면죄부를 주는 명분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물론 국내신문이 이같은 문제에 대해 과거보다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객관적 진실’ 보도가 되도록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면서, 관련인사의 인권침해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내신문이 보도로 인한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얼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이용훈 = 모든 기사에 대해 기자실명제를 시행하는 것은 책임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발전입니다. 기자들이 사실관계 확인에 기울이는 노력도 계속 커지고 있고요.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회처럼 신문사 스스로 사후조치를 취하는 것도 진일보한 변화이지만 앞으로는 사전심의제 같은 장치를 둬서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구하는 추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영석 = 역설적으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언론만이 ‘인격권’ 보호에 신경을 써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급 학교에서 작성하는 이른바 ‘가정환경조사서’ 같은 것을 보면 사생활과 관계된 학부모의 직업 직위 학력 등 신상명세와 함께 소득수준까지 기록토록 요구하는 일이 아직도 행해지고 있어요. 개인의 인권보호에 언론이 얼마만큼 부응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회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자들은 항상 어떻게 독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기사 관련인사의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느냐를 놓고 갈등을 겪습니다. 충돌하는 두 목표의 조화점을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요.
▽이용훈 = 알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먼저 생겨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일천한 것이지요. 그리고 알 권리의 실체는 아직 추상적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은 무한정인데 ‘모든 것을 (재미로) 알고 싶다’가 ‘알 권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공인의 행동은 국민에게 노출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공인이라 함은 우선 자기를 알리고 싶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국민으로부터 일정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으로 크게 정의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적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 활동이 어느 순간 공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시공간에서는 공인의 성격이 강해집니다.
▽양창순 = 구미로부터 전수된 알 권리의 개념을 이제 우리가 다듬어가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공인이라 해도 그 세세한 사생활까지 다 알아야 한다는 합당한 근거가 있느냐는 의문이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기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끝없이 보도가 나오는데,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알 권리’로 혼동해 마구 파헤치듯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이종왕 =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대중에 노출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법률적으로 공인에 포함됩니다. 검증받아야 할 책임이 생기는 것이지요. 마치 대중의 우상이 자신의 기호식품이나 사생활이 거의 공개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용훈 = 기사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기자들에게 인권침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면서 항상 완벽한 기사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겠지요. 그러다 보면 기자가 위축돼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없고 결과적으로 독자의 알 권리가 침해당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종왕 = 잘못된 보도에 대해 언론이 솔직 과감하게 인정하고 시정해 나가려는 자세가 절실해 보입니다. 이는 긴 시각으로 보면 독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첩경입니다. 잘못된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에 성의를 보일수록 독자들은 ‘그 밖의 모든 기사는 정확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국내언론의 인권침해 사례와 관련한 법원의 판결 추세는 어떠한가요.
▽김영석 = 관련 판례가 최근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전두환정권 시절 아주 적었다가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현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권위주의적 정권의 직접적 언론 탄압 속에서 개인 인권침해 방지보다는 언론의 자유라고 하는 사회적 책임에 더 무게가 실렸던 시대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종왕 = 법원은 점차 언론의 민사책임을 강하게 물어가고 있는 추세입니다. 배상액수도 갈수록 커지고 있고요. 그러나 언론 보도를 위축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인에 대한 사실관계 보도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일반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김영석 = 미국의 경우 언론의 인권침해에 대한 손배소송액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도 분명한 판결 원칙은, 크게 잘못된 사례에 한해 엄격히 대처해 상징적 효과를 거두되 기본적으로는 언론자유의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위원장께서 앞으로 독자인권위원회의 운영방향에 대해….
▽이용훈 = 동아일보사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동아일보사가 국민의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보도대상이 되는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독자인권위원회를 구성한 만큼, 21세기 언론문화 선도에 초석을 놓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정리=박윤석기자>
▼독자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인터뷰▼
▶李容勳위원장
“동아일보를 사랑하는 국민과 독자의 편에서 회사측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초대 독자인권위원장을 맡은 이용훈(李容勳·59·사진)전대법관은 “언론사 스스로가 독자인권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은 진일보한 태도”라고 평가하면서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이위원장은 “피해의 사후구제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보다 중요하다”면서 회사측에 대해 평소 인권위원회의 비판적인 이야기를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인권위원회는 독자의 참여가 중요한만큼 “독자들의 활발한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친 기사경쟁이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해치고 해당 당사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인권위원회가 인권을 존중하는 신문을 만드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남 보성 △서울대법대 △고시 15회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서부지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중앙선관위원장 △현 변호사
▶李鍾旺위원
이종왕(李鍾旺·52·사진)변호사는 “인권위원회가 보도피해를 겪는 독자의 권리회복이라는 사후대책에 역점을 두고 있으나 위원회 활동을 통해 신문보도의 인권침해 소지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변호사는 지난 80년부터 검사의 길을 걸어오다 99년 12월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시절 옷로비 사건 재수사 때 엄정한 수사에 대한 소신이 벽에 부닥치자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대검 공보관을 지내 언론의 공정보도에 대한 관심도 높다.
△경북 경산 △서울대법대 △사시 17회 △대검 공보관 △법무부 법무과장·검찰1과장 △제주지검 차장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현 변호사
▶金永錫위원
김영석(金永錫·47·사진)교수는 “상호작용적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서 수용자의 불만 등을 시의적절하게 처리할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독자 중에서 선정된 중재자로서 독자의 입장을 언론사에 전달하고 또 언론사의 입장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교수는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관한 문제는 물론 기본적인 인권보호의 차원에서 독자와 언론사의 마찰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충북 청원 △연세대 신방과 △미국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박사·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현 연세대 신방과 교수 겸 대외협력처장
▶楊昌順위원
양창순(楊昌順·46·사진)원장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큰 힘은 합리성”이라며 “동아일보가 최초로 도입한 독자인권위원회는 언론 분야에서 합리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원장은 “국민들이 비합리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개인이 희생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불신을 권하는 사회’ 같다”며 “독자인권위 활동을 통해 그 믿음을 회복하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연세대의대 의학박사 △정신과·신경과 전문의 △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부원장 △현 양창순신경정신과·대인관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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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서비스센터 보고▼
‘독자인권위원회 출범’을 알리는 사고가 실린 4월20일부터 첫 인권위원회가 열린 5월10일까지 3주간 접수창구인 독자서비스센터에 쏟아진 피해구제 신청은 모두 80여건. 전화문의를 비롯해 우편 팩시밀리 E메일 등을 통해 꾸준히 접수됐지만 인권위원회의 심의대상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독자들이 많아 아쉬움을 샀다.
대부분 동아일보의 보도와는 관련이 없는 전반적인 인권침해 및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구제신청으로 인권위원회의 재량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35년 전 베트남전 파병 시절 얻은 정신분열증으로 아직도 고통받고 사회적응을 못하는 실정이니 독자인권위원회가 구제해 달라” 등 안타까운 하소연도 많았다.
이밖에도 독자서비스센터에는 독자의 의견 제보 제언 오류지적 문의 등 기사와 관련한 전화도 종일토록 쏟아지는데 한달 평균 접수량이 1000여건에 이른다. 이 중 단순오류 지적도 50건을 오르내리는 수준. 독자의 의견은 적극 제작에 반영해 ‘쌍방향 신문’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오류 지적은 ‘바로잡습니다’란에 정정기사를 내보낸다. 독자가 잘못 알고 있어 설명이 필요할 경우에는 ‘알려드립니다’란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오해도 해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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