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언에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방향을 지향한 통일을 추구한다는 항목이 있다. 1년 동안 이 분야에서의 진전은 전혀 없어 F학점이 적합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방북의 커다란 성과의 하나가 북이 연방제를 포기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며 통일은 앞으로 20∼30년 후에나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중에는 햇볕정책의 목표는 북한 체제의 존속을 지원하는 것이며 반통일·역통일 정책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전문가들은 햇볕정책이 북한 체제의 궁극적인 붕괴와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천상의 한계만 노출▼
한편 북에서는 작년 최고위급회담과 6·15 선언의 최대 의의는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은 그런 인식하에 일정한 노력을 했고 남은 가시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통일을 위한 자주적 원칙도 실천됐다고 말할 수 없어 D학점 수준.
당국간 협의 해결원칙은 상당히 실천됐다고 할 수 있어 B학점을 줄 만하다. 장관급회담, 국방장관회담, 기타 실무자급 회담 등이 열렸다. 그러나 한국은 대체로 저자세로 회담을 간청하고 북측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려는 데 급급했다. 장관급회담 구성에 있어서 북측의 대표단 구성은 불균형적이었고 회담의 정례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북측이 일방적으로 연기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선례를 남겼고 회담 개최 때마다 의제 장소 조건 등 북의 요구에 적응하며 대가연출에 고심하는 패턴이 정착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은 A학점이지만 성과면에서는 F학점이 타당하다. 통이 크고 광폭정치를 실천한다는 김위원장의 서울 출연 ‘깜짝쇼’를 집권측은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연내 서울방문과 고위급회담이 보다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공동선언에 규정된 북의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한국 정부가 약속을 이행, 63명을 송환했으니 A학점이다. 북은 그들을 영웅 대접해 체제의 우월성과 정통성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정부의 업적은 C학점. 3차에 걸쳐 남북이 각각 100명씩 방문단을 교환해 친척까지 포함하면 3600여명이 상봉했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일본에 피신시키기는 했지만 정부의 노력은 A학점. 남북이 각각 300명씩 서신을 교환했고 면회소 설치에 관해 원칙적으로는 합의했다.
공동선언에는 균형된 민족경제 발전에 관한 조항이 있다. 노력은 A학점, 실천은 C학점. 경의선 철도와 도로 연결에 관한 합의가 있었으나 군사적 실무 문제에 대한 합의서 서명에 북이 불응하고 있다. 한국은 일방적으로 지뢰제거 작업을 완료하는 등 적극 추진했으나 북은 공사 인력과 장비를 철수해 사업이 중단됐다. 개성공단사업은 현지조사를 끝내고 북의 법제화를 기다린다고 한다. 현대측의 자금문제, 현대와 한국토지공사간의 불협화음 등 주로 남쪽 사정으로 답보상태다. 투자보장 등 경협 관련 4개 합의서에 남북이 동의했으나 발효를 위한 법적 절차를 기다린다고 한다. 시급한 남북간 직거래 문제, 해운협정문제 등은 미해결 상태다.
사회문화 교류면에서의 성과는 C학점. 연예인과 한국창극단의 방북공연과 방송사의 방북취재 등이 남북상호 이해 증진과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했다고 정부는 홍보하고 있다.
▼'햇볕' 추진자 역사가 평가▼
공동선언에 명시된 사항은 아니지만 정상회담 후 추진되는 남북화해협력사업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안보의식의 희석, 이념갈등의 격화, 보안법의 실질적 무효화, 반미감정의 확산 등 북한에서는 남조선 혁명역량의 강화 현상이라고 볼 징후가 발생하고 있다. 남쪽에 비해 충격은 제한된 것이겠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북한에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햇볕정책 추진자들이 북한의 현 통치체제 보전에 공헌하는 북의 1등 공신이 될지, 북의 점진적 성공적 개혁을 통한 남북간 화해협력, 평화공존, 궁극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변혁된 체제 구축에 공헌한 민족의 특등 공신이 될지, 북한 체제의 붕괴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촉진한 남측의 1등 공신이 될지는 역사가 답할 것이다.
내년 6월의 성적표는 모든 국제적 국내적 요인들의 추세를 검토해보면 올해의 성적표보다 나아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진(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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