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이문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전 교육부 장관이자 나의 스승이신 조완규 교수님이 하버드 대학을 둘러보러 오셨을 때였는데, 두 분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 내가 운 좋게 끼어 들어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내가 학위를 마치고 그곳을 떠나게 된 1990년대 초반까지 나는 하버드 스퀘어나 시몬스 대학이 있는 보스턴 미술관 근처에서 산보를 즐기시던 선생님을 몇 번 더 뵐 수 있었다.
지금은 나도 철학 하시는 분을 몇 분 알고 지내는 영광을 누리고 살지만 당시 내게는 가끔 길에서 뵙는 선생님의 모습과 말씀이 칸트나 하이데거 그리고 데리다 그 자체였다. 철학자들은 길을 걸을 때도 걸음 하나 하나에 저렇게 생각을 담는구나 싶었다.
그러던 선생님이 나와 비슷한 때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이 땅에 돌아오셨다. 나는 그 동안 선생님의 글을 여기저기에서 찾아 읽었는데, 그 중 최근 것 26편을 묶어 ‘더불어 사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제목으로 펴내셨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문학과 언어, 문화, 사회변동과 인간의 정체성, 윤리와 도덕, 인문학의 중요성, 페미니즘, 미학, 그리고 죽음에 대한 명상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모든 글들을 꿰뚫는 하나의 화두가 있다. 바로 생명의 본질에 관한 생태학적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다.
문학과 철학 두 분야에 걸쳐 박사 학위를 하신 선생님이 ‘문학 속의 철학(일조각, 1975)’ ‘인식과 실존(문학과지성, 1982)’ ‘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민음사, 1996)’ 등을 거치며 다다른 곳은 문명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 즉 생태학적인 반성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문명의 화려한 타이타닉호가 역사의 큰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것을 불쾌하게 느끼지 못할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어떤 의미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맨 끝장에 있는 인터뷰 내용이다.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다듬어진 다른 글들과 달리 다분히 즉흥적인 답변들에는 앞으로 선생님 자신도 오랫동안 더 씨름해야 할 것 같은 신선한 충격들이 척척 묻어난다.
그 중 하나.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서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며, 선생님은 “이제 누군가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고안하고 제2의 올바른 공산당 선언을 심각하게 생각 할 때”라고 말한다.
최재천(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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