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말부터 경실련을 이끌고 있는 이 총장은 최근 펴낸 ‘헌법 등대지기’란 자전적 에세이집을 통해 시민운동의 초법화(超法化),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의 관료화 경향을 지적하고 이 때문에 시민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민단체가 스스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진행과 함께 힘을 얻기 시작해 사회의 틀을 시민중심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지난 10여년 동안 2만여개의 시민단체가 경쟁적으로 결성됐고 몇몇 단체는 전국망을 갖춘 거대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세몰이식 영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마저 보였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 시민단체들이 ‘법을 뛰어넘어’라는 표현으로 사실상 위법임을 인정하면서도 목표의 정당성을 내세워 낙선운동을 밀고 나갔던 것이 시민단체의 초법적 문제 해결 방식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시민단체의 입장에 동의함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졌지만 그 후 법원은 단호하게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법을 어겨서는 정의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언론개혁운동을 주도하면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행법상 세무조사 결과는 공개할 수 없는데도 이를 요구하는 것은 법질서를 무시한 발상이다. 정 그것이 필요하다면 먼저 법 개정 운동을 벌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 시민단체는 정부로부터 일부 사업비를 지원받아 순수성도 의심받고 있는 처지다.
물론 시민운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동안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소액주주운동 등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다름 아닌 시민단체다. 문제는 시민운동이 그야말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법치주의의 기본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총장의 반성은 신선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시민단체의 생명은 도덕성과 비당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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