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이익에 크게 기여하는 ‘성골’ 또는 ‘진골’ 손님은 특별대우를 받는 반면 덜 기여하는 ‘육두품’ 소비자는 낮은 대접을 받는 것.
이른바 고객관계경영(CRM·Customer RelationshipManagement)’기법이다.
고객관리 비용을 많이 들이는 금융업과 유통업체들은 ‘돈이 되지 않는’ 손님인 ‘평민’소비자와는 거래를 끊으려 할 정도.
새로 나타나고 있는 흐름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글 싣는 순서▼ |
上-"돈 안되는 고객은 사양합니다" 中-"두둑한 고객 20% 잡아라" 下-"단골은 환영, 뜨내기는 사절" |
서울 종로구 종로5가 S신용카드사 콜센터. 16일 오전 두 고객으로부터 잇달아 전화가 걸려왔다. 상담직원이 전화를 받자 컴퓨터 모니터에 고객정보가 자동으로 떴다. 김모씨(48)는 7가지 고객분류 중 최상층인 VIP. 화면엔 김씨에 관한 수십 가지의 정보와 함께 ‘VIP·고객 요청은 모두 들어줄 것’이라는 지침이 떴다. 상담원은 김씨의 문의에 줄곧 친절하게 대응했다. 상담시간만 10여분.
‘불량고객’으로 분류된 이모씨(33)에 대한 대응은 달랐다. 이씨는 “신용한도가 3개월째 줄어드니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상담원은 ‘신용한도를 늘려주지 말 것’이라는 지침에 따라 이 요구를 거절했다. 이씨는 불쾌한 어조로 “당신네 회사 카드를 사용하지 않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 이씨는 자신이 거래를 끊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다. 회사측이 연체경력이 많은 이씨와 거래를 끊기 위해 신용한도를 계속 줄이면서 이씨를 압박했다. 이씨 스스로 거래를 끊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
현대백화점은 올해부터 ‘취소 다발 고객’ 명단을 관리하고 있다. 자주 반품하는 고객을 특별관리하는 것. 직원들은 이들이 매장에 찾아와도 적극적인 응대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물건을 팔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
‘소비자가 왕’인 시대에 이런 고객대응은 명백한 해사(害社) 행위였다. 그러나 고객차별화시대에는 회사에 이익이 되는 행위로 해석된다. 기업의 소비자 대응전략이 왜 이렇게 바뀐 걸까.
서울대 경영학과 이유재 교수는 이를 “고객데이터를 추적한 결과 수익의 대부분을 우량고객이 기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기업의 소비자 대응전략이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를 한 묶음으로 대응하던 기업이 소비자를 성골, 진골, 6두품, 평민으로 나누어 대접하는 ‘소비자 신(新) 골품제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부 시중은행이 10만원 미만의 소액예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주지 않고 제일은행이 5만원 미만의 소액예금을 받지 않는 것도 이 때문. 은행들은 또 공과금 수납대행, 자기앞수표 발행, 예금이체 등 수수료가 원가에 못 미치는 서비스를 줄여나가고 있다. 은행수익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거래는 될 수 있으면 줄이겠다는 뜻. 대신 VIP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전체 고객의 5%에 불과한 VIP고객이 은행 전체 예대마진의 65%, 은행 수익의 49%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된 한 시중은행의 내부자료를 보면 차별화 전략의 배경을 알 수 있다. 고객의 82%를 차지하는 일반고객은 은행 예대마진의 12%밖에 기여하지 못한다.
신세계백화점 김봉호 마케팅실 부장은 “동네 음식점도 단골과 뜨내기손님에 대한 대우는 다른 법”이라며 “기업의 서비스 차별화를 불평등이라는 시각보다는 개별 고객에 맞는 ‘맞춤 서비스’ 제공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병기·하임숙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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