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넘쳐나는 벤처자금…"투자는 아무데나 하나"

  • 입력 2001년 6월 17일 18시 41분


<<13일 무역협회에서는 벤처업계의 이목이 쏠린 행사가 열렸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주최로 열린 ‘벤처산업 육성을 위한 연기금의 역할’이란 주제의 세미나였다. 이날 발표자로 참가한 국민연금 장길훈 투자전략팀장은 벤처캐피털업계의 열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 팀장은 기자에게 “벤처투자가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투자할지는 여러 가지를 재봐야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정부가 벤처지원에 ‘마지막 승부’를 걸었기 때문에 반드시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올해 정부출자 벤처투자조합 결성 계획

부 처

펀드명

조합 조성내용

출자재원

정부출자민간
중기청창업투자조합1,0002,300중기창업 및 진흥기금
정통부정보통신전문조합 7001,000정보화 촉진기금
과기부MOST4호 150 350과학기술진흥기금

문화부

디지털콘텐츠펀드 100 200문화산업 진흥기금
영상펀드 100 400영화진흥금고
농림부농업벤처펀드 100 200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
합 계 2,1504,450
(자료: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들의 지적처럼 지난해 코스닥의 붕괴로 한파를 맞았던 벤처업계에 정부의 지원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꾸준한 활동을 펴온 창투사들은 상당한 투자재원이 쌓여있는 상황.

실제 주무부처인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11∼12월에 1497억원을 창투조합에 쏟아부은데 이어 올해 예산이 배정된 1000억원은 이미 상반기에 모두 집행해버렸다.

한발 더 나아가 중기청 강기룡 사무관은 “추경예산 때 예산을 추가배정토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창투조합에 지원되는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 등 정부지원예산은 올해 2150억원. 정부는 또 창투사가 투자한 벤처기업이 코스닥에 등록할 경우 지분을 6개월동안 처분하지 못하도록 한 락업(lock-up)조항도 완화해 자금부담을 덜어줄 방침이다. 9월경에는 국민연금에서 1000억∼2000억원의 벤처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며 창투사에 대한 은행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은행대출담보채권(CLO)제도도 이달말부터 시행된다.

중견 벤처캐피털업체인 일신창업투자의 고창석 대표이사는 “일부에서는 자금조달이 안된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실질적인 활동을 해온 창투사들은 올 들어 확보한 투자재원만 약 1조원에 이른다”며 “요즘은 정부의 지원이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벤처캐피털의 진짜 고민은 쌓여있는 재원을 투자할 곳이 없다는 데 있다.

현재 약 100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결성해놓은 STIC벤처투자. 11명의 기업심사역이 매일 벤처기업들을 방문하며 투자처를 찾고 있지만 영 ‘쓸만한 물건’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 수익모델이 불분명한 닷컴기업은 쳐다보지 않은 지 오래됐고 주로 쳐다보는 업종이 상품화를 통해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전자부품 및 소재업체들이다.

STIC벤처투자의 심사역인 정근호 과장은 “지난 2년간 코스닥에 진입한 벤처기업들이 대부분의 아이템을 선점하고 있어 틈새시장을 가진 벤처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한달에 2∼3건 투자하던 것이 올 들어서는 2∼3달에 한건일 정도로 신중해졌다”고 밝혔다.

산은캐피탈의 김종일 책임심사역은 “벤처 육성책으로 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겼지만 워낙 경쟁이 심하다보니 출혈경쟁을 통해 양적성장만 추구할 뿐 기술력을 쌓을 여유가 없다”며 “특히 최근 관심이 높아진 바이오분야는 ‘제2의 닷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코스닥시장의 등록요건이 강화된 것도 창투사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 코스닥시장에 등록되어야만 투자재원을 원활히 회수할 수 있는데 코스닥 진입에 성공할 만한 기업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일부 창투사는 벤처기업을 아예 미국과 일본 증시에 올리는 쪽에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부호 이사는 “정부가 각종 지원을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가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본격화되지는 않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벤처업계의 분위기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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