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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직장잃은 가장 어디로… 中-경력·학위 물거품…오라는 곳 없다 下-"그래도 두드리면 열린다" |
일류대를 졸업한 뒤 D그룹 공채로 입사해 15년동안 해외통으로 전문성을 쌓아온 박원로씨(42·이하 모두 가명). 한국의 주요 그룹에 소속돼 있다는 보람에 낮이고 밤이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룹이 99년 부도났다.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뒤 지금까지 2년동안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싶지만 무역및 제조업 경력만을 가진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택시운전사로 나선 박동렬씨(46)는 요즘 운전을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다. 페인트 회사에서 17년 동안 페인트 제조기법을 개발했고 한국에서는 손꼽히는 페인트 전문가로 자처했던 박씨는 외환위기때 명예퇴직했다. 중학생 아들의 학원 수강도 중단시키고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도 했다. 아직도 몇몇 페인트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하지만 뚜렷한 소득이 없다.
김중수씨(45)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온 경우. 서울의 중위권 대학 경영학과를 나와 한 5대 그룹의 주력 계열사에서 15년동안 재무통으로 일할 만큼 ‘잘 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룹의 신규 사업 제안서는 반드시 김씨의 실무검토를 거쳐야 승인된다는 불문율이 있었을 정도다. 회사의 지원으로 90년대 중반에 1년동안 유럽 유명대학 경영학석사(MBA) 코스를 거치기도 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벤처열풍에 ‘이번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던 김씨는 지난해 초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동안 경력을 바탕으로 IT와 관련된 기획일을 해보고 싶었다. 몇몇 정보통신 회사에서는 계약직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게 아닌가’라며 슬며시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재무전문가가 IT 기획자로 변신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벤처업계에서는 자신과 같은 경력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해외유학파’가 잘 나가는 시대라고 하지만 40대는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최남석씨(41)는 30대그룹 전자 계열사에서 회계전문가로 11년간 일하다 경력관리를 위해 집까지 팔아서 미국 중위권 대학 MBA 코스를 마쳤다. 올해초 자신있게 귀국했으나 반년째 실직자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뒀으나 보험회사나 정수기회사의 영업사원 제의만 들어온다. 장남으로서 나이든 부모님을 볼 면목도 없다. 당초 연봉을 1억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최근에는 4000만원으로 ‘구조조정’했다.
창업에 나서기도 해보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 일류대를 졸업한 뒤 유수 식품회사에서 일했던 안경인씨(42)는 마케팅부서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제품을 잇따라 개발해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업무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원으로 발령났다. 안씨는 회사를 나가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다. 올해 조그만 식당을 열어봤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가 아닌데’라는 생각만 계속 든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4월 현재 총 실업자 수는 84만8000명. 실업률은 3.8%. 이 가운데 40대 실직자는 22.1%인 18만7000명이나 된다.
안주엽 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40대 가장의 실직은 가정의 파괴로 이어질 만큼 위험한 문제”라며 “고용보험이 시작된지 5년밖에 안되는 등 사회 안전망이 짜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실직한 40대를 현 상태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사회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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