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봐도 유쾌한 배우 박중훈이 이 영화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한국 배우로는 그가 처음 출연한 것이니 한국 영화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 한국계 배우인 릭 윤이 ‘삼나무에 내리는 눈’이란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블록버스터라 하기엔 약하고, 또 미국에서 자란 릭 윤과 달리 박중훈은 겨우 2년의 유학 경험을 가진 토종파 배우이니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박중훈이 주연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세 번씩이나 보았다는 드미 감독은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촬영장에 나타난 박중훈의 표정과 걸음걸이까지 흉내내며 반겼다. 하지만 다른 할리우드 팀들은 그를 그저 동양에서 온 배우로 무덤덤하게 대했다고 한다.
친화력과 적응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박중훈은 성실한 연기와 능글맞은 농담을 병행하며 때로는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협박(?)도 해보고, 비싼 샴페인을 사주며 얼러도 보는 다양한 작전을 구사한 끝에 그들을 점차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때 마침 프랑스 전역 25개 극장에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돼 호평 받는 바람에 프랑스 언론의 기자들이 박중훈에게 관심을 보인 것도 할리우드 팀이 그를 인정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32만5000달러(약 4억2000만원)의 개런티를 받은 박중훈은 영화사 측에서 마련해준 월세 1만 달러 짜리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분장사, 헤어스타일리스트, 조감독, 의상 코디네이터 등 그에게 전담으로 따라붙은 할리우드 스텝만 4명이었다.
그의 배역 이름인 ‘이일상’도 박중훈이 직접 지었다. 직접 지어보란 드미 감독의 말에, 배우로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의 성과 자신을 이 세상에 낳아준 부친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찍고 나서 한창 주가가 오를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유학 갔던 그의 용기는, 이후 ‘아메리칸 드래곤’과 ‘현상수배’ 등을 외국 스S과 찍던 연습기간을 거쳐 최초의 할리우드 진출 배우가 될 수 있었던 초석이 됐다.
출연료로 받은 달러를 한 푼도 안 쓰고 전액 한국의 은행으로 송금했으니 외화획득 차원에서 애국자가 아니냐며 특유의 눈웃음을 치는 박중훈. 메이저리그를 뒤흔든 박찬호와 LPGA를 점령한 박세리와 함께 이제는 할리우드 정복에 나선 박중훈까지 세 박씨가 한국인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우리 영화계에서 안성기가 ‘국민 배우’이고 강수연이 ‘월드 스타’라면, 본격적 할리우드 정복에 나선 박중훈에게는 ‘국보 배우’라는 애칭을 붙여주면 어떨까?
김영찬(시나리오작가)nkja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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