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영훈/관할수역 넓어 못지킨다?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20분


북한 상선의 영해침범, 그리고 정전협정, 남북기본합의서상의 우리 관할수역 및 북방한계선(NLL) 침범이 국가적 쟁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와 군 당국은 관할수역이 너무 넓어 효율적으로 지키기 어렵다는 명분으로 NLL 관련 작전예규와 교전규칙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에는 납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부당한 내용이 적지 않다.

첫째, 정부나 군 수뇌부에서 관할수역이 넓어 지키기 어렵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변명일 뿐이다. 북측이 그 넓은 관할수역을 우리보다 더 많은 해군세력으로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어 우리 선박이 그 수역에 못들어 가는가? 절대로 아니다. 그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요, 조금만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북측은 일관되게 강력 대응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저들의 수역에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원칙도 있고 분쟁을 야기할 의도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해군은 과거 지금보다 훨씬 열세였던 세력으로 관할수역을 어떻게 잘 지켜왔는가? 안보에 대한 정부와 군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해양주권 침해에 대해서는 각국이 법대로 응징하는 원칙이 확립돼 있고, 이로 인해 외국선박은 연안국의 관할수역을 멋대로 침범하거나 관할수역에서 위반행위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의지가 없다. 이것이 문제다.

둘째, 우리 해군력으로 지키기 어렵다고 현 관할수역을 좁히고, 북한선박이 수시로 자유롭게 우리측 연안수역을 왕래할 수 있게 하면 북한 간첩선이나 잠수함의 침투가 더욱 용이해진다. 따라서 이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해군력이 필요해진다. 결국 정부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 억지논리일 뿐이다.

셋째, 대통령은 국가를 보위할 책무가 있는 군 통수권자로서 법을 준수하고 안보를 튼튼히 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런데 북측의 영해 등 침범이 있자 즉시 북측이 원하는대로, 그것도 일방적으로 NLL을 축소하려는 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NLL 변경이 필요하다면 남북 화해협력이 상당 수준 제도화되고 군사적 신뢰구축이 어느 정도 이뤄진 후 남북간 협의에 의해 상호주의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넷째, 주권국가로서 자국 영해를 침범하거나 접속수역, 배타적 경제수역 등 자국 관할수역에서 법령을 위반하는 외국선박을 방치하는 국가가 어디 있는가? 국제법상 국가는 자국 관할수역에서 범법한 외국선박에 대해서는 정선시켜, 임검, 수색하고, 혐의가 확인되면 나포해 처벌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정선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공포를 발사해 정지시키고, 그래도 불응하면 선수 방향 앞쪽에 실탄을 발사하고, 그래도 불응하면 그 선박을 제압하는 데 필요한 무력을 사용해 나포하게 돼 있다. 이것이 국제법상의 절차이고 모든 국가가 그렇게 시행하고 있다.

우리 선박이 북측 수역에 허가 없이 들어갔다고 판단하면 북한은 지금까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북측은 국제법상 절차도 무시한 채 한마디로 어선이든 군함이든 즉각 포격, 나포, 억류, 격침하지 않았는가. 과거 동해에서 해군 경비함 56함도 북방한계선을 침범했다고 즉각 격침시키지 않았는가?

그런데 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은 북한상선의 영해침범에 우리 군이 소극 대응했다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 "발포하면 나라 경제가 붕괴된다" 고 하는 판국이니 정부 여당의 안보관이 한심하고 경제관이 한심하다 못해 어이없을 뿐이다. 우리 영해를 침범한 북한상선을 나포했다고 경제가 붕괴될 것도 없고, 사실이 그렇다면 그것은 정부의 무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또 안보 없는 경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부는 1999년 연평해전에서 선제공격한 북한 경비정에 대해 우리 해군이 자위조치로 응사, 격침시켰다고 대한민국의 경제가 붕괴되었는지, 그리고 연평해전이 6·15 공동선언에 장애가 됐는지 생각해 보라.

정부는 대북정책 문제로 안보의 기조를 위태롭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으며 그 정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양식 있는 정치인과 언론과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강영훈(전 해군대학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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