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황금사자기]3회 타격왕출신 前캐스터 황우겸옹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25분


“청취자를 외면하느냐, 산모를 버려 두느냐.”

1950년대 초반 국내 하나뿐인 라디오방송인 서울중앙방송의 유일한 야구캐스터 황우겸씨(72)는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팀과 한국팀의 친선 야구경기 중계에 열을 올리던 황씨에게 “산모가 위독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급한 연락이 온 것.

황씨는 만삭의 몸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안절부절못했다. 결국 그는 고민 끝에 청취자를 선택했다. “야구 중계할 사람이 나 밖에 없었고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있는데 어떻게 마이크를 놓고 병원으로 갈 수 있겠나. 집사람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었어.” 황씨는 경기가 끝난 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아기는 이미 사산된 뒤였다. 당시 신문엔 끝까지 청취자를 버리지 않은 황씨의 얘기가 대서특필됐다.

황씨는 국내 유일한 야구선수 출신 아나운서. 동산중(현 동산고)에서 주전 3루수로 활약하던 1949년 제3회 황금사자기대회에선 타격왕(0.429)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선수시절 가장 기억에 담아둔 선수는 동갑내기인 ‘경남중의 전설’ 장태영씨(99년 작고). 황씨가 뛴 동산중은 전국대회에서 고비 때마다 장태영의 경남중에 막혀 우승기회를 놓쳐 한이 됐다고 한다. “그 양반,정말공이 무시무시했지. 왼손인 데다 볼이 빨라 어떤 타자라도 손댈 수가 없었어.”

황씨는 “학생야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게 안타깝다”며 “올 황금사자기대회엔 동대문구장을 찾아 옛 추억에 젖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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