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달라이 라마도 못오는 나라

  • 입력 2001년 6월 19일 18시 40분


티베트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또 다시 무산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는 엊그제 “외교통상부가 7월 방한 불허를 통보해 왔다”며 “김대중(金大中)정부 하에서는 다시 방한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이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해 왔다.

외교부는 국무총리가 중국을 방문하는 상황에서 그의 방한을 허용하는 것은 외교관례상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 ‘긍정’과 ‘부정’의 방향을 왔다갔다한 외교부의 어정쩡한 자세를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는 그의 방한에 다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다시 태도를 바꾸었다. 지난달 말 중국을 방문중이던 한승수(韓昇洙) 외교부장관은 “한국엔 종교의 자유가 있다. 민간활동을 정부가 막기 어렵다”고 그의 입국허용을 시사했었다.

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는 세계 곳곳을 순회하며 물질문명에 찌든 현대인에게 영혼의 세계를 설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50여개국을 방문했으며 최근에도 대만 미국 등을 다녀왔다. 늘 중국과 긴장관계인 일본도 10여 차례나 방문했다.

그의 이 같은 활동은 티베트를 이끌고 있는 정치지도자로서가 아니라 종교지도자로서다. 이번 우리측 초청도 순수 민간차원이고 내한할 경우 강연 등 문화 종교행사만으로 짜여질 예정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유독 우리나라만 방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종교지도자의 옷을 입고 중국의 분열을 선동하는 분열주의자”라며 그의 방한 불허를 요구해 왔다.

물론 외교적 경제적 실리를 따져야 하는 정부로서는 중국의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에는 힘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경제분야에서 대(對)중국 의존도가 어느 나라보다 크고, 남북관계에서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 중국을 자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문화적 가치나 정신세계를 포용하는 우리나라의 용량이 그처럼 좁다는 것이 너무도 서글프다. 경제 등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 정신적인 면을 소홀히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줏대없는 나라’라는 평가를 받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결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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