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분석하고 아이디어와 경험으로 가장 효율적인 개발을 이끌어내는 작업.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사업자)’의 몫이다. <편집자>
국내 디벨로퍼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신영 정춘보(鄭春寶·46·사진)사장은 “디벨로퍼는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디벨로퍼는 단순한 ‘개발사업자’ 그 이상이다. 먼저 땅을 살핀다. 입지여건과 주변 수요를 파악해 가장 적합한 상품을 기획한다. 여기에서 승부가 난다. 자금조달 설계 시공 감리 인테리어 시공 등은 물론 입주 후 건물의 운영이나 관리까지 맡는다. 토지 매입과 상품 기획을 제외한 나머지 과정은 대부분 아웃소싱으로 해결한다.
정사장은 “건설업체가 맡는 시공은 디벨로퍼 업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국내에서 생소한 이 개념은 외국에서 오래 전부터 보편화돼 있다. 미국의 ‘부동산 왕’ 도널드 트럼프도 디벨로퍼다.
한국 부동산 시장도 디벨로퍼 시대를 맞았다. 요즘 수백대 1의 청약경쟁 속에 인기를 끌고 있는 주거형 오피스텔, 초고층 주상복합 등은 그들의 ‘작품’이다.
대형 사업가운데 정사장의 첫 작품은 분당 오리역 옆에 있는 주거형 오피스텔 ‘시그마Ⅱ’. 96년 시그마Ⅱ 부지는 미분양된 토지공사의 골칫덩이였다. 아파트나 상업시설을 짓기 어려운 위치였다.
그는 ‘주거형 오피스텔’을 생각해냈다. 그것도 1094실에 이르는 대단지 규모였다. 주변 임대수요와 땅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해낸 결과다. 이는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개발사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었다. 죽은 땅을 살려낸 셈이다.
으레 아이디어 사업이 그렇듯 디벨로퍼의 수익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정확한 수익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주상복합 단지 한곳을 개발해 수백억원을 남기기도 한다.
정사장은 땅을 보고 개발 여부를 5분 내에 결정한다. “오랜 경험과 혜안이 있다면 5분은 넉넉한 시간”이라며 “학문보다 철저히 현장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경험은 부동산 개발에 관한 전 과정에 걸쳐 있어야 한다.
그는 “디벨로퍼를 꿈꾼다면 우선 개발 전문업체에서 첫 발을 떼야합니다. 적어도 10년은 배워야합니다”라고 말했다. 실패와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업료’를 내야한다.
정사장은 매달 한 번은 외국에 간다. 밀라노 가구박람회, 뮌헨 주방가구 쇼, 볼로냐 타일 쇼, 베로나 대리석 쇼, 시카고 건자재 쇼 등 새로운 건축 동향을 보기 위해서다.
그는 디벨로퍼가 되고 싶다면 올 여름 건축 관련 국제 박람회가 있는 곳으로 해외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한다. 한국의 도널드 트럼프가 많아질수록 좁은 국토가 살기 좋고 효율적인 공간이 될 것 같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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