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이복남매의 사랑이야기<불면증>

  • 입력 2001년 6월 20일 18시 30분


"나 누나 좋아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계속 좋아했었어"

"넌 나한테 동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알겠어?"

희진은 영호의 고백을 차갑게 잘라 버린다. 하지만 희진의 냉정함은 영호에게 이끌리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자기방어일 뿐.

희진에게 여름은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장마, 열대야, 끈적임 그리고 불면증. 희진은 영호 때문에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다.

올해 고3인 희진은 아빠의 갑작스런 재혼선언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3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어떤 일에도 자신의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아빠의 재혼상대자는 자신과 동갑인 아들 영호와 단둘이 살고 있는 아줌마.

여름부터 희진은 새엄마,영호와 한집 생활을 하게 된다. 무뚝뚝한 희진과 달리 영호는 사교성이 좋고 성격이 밝다. 생일이 빠른 희진은 영호에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장난치는 등 둘은 그런대로 잘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와 새엄마는 친척집 방문으로 집을 비우고 희진과 영호는 단둘이 남는다. 갑자기 영호는 희진에게 사귀자는 제안을 하며 이마에 얇은 입맞춤을 한다. 이후 둘의 감정은 미묘해지고 희진도 어느새 영호를 좋아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희진이 자신의 마음을 영호에게 보일까 말까 고민하던 어느날 새엄마는 두사람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너희들 동생이 생겼다."

이날 처음으로 영호는 희진에게 '누나'라고 부르고 이를 듣는 희진의 마음은 아프다.

최근 출간된 순정만화 <불면증>(학산문화사 펴냄)1권은 애써 영호에게 차갑게 대하는 희진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복남매의 사랑이야기가 그리 새로운 소재가 아니지만 <불면증>은 희진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따라가는 전개방식으로 신선한 재미를 꾀했다.

특히 불면증으로 희진의 괴로운 감정을 처리한 것은 늘어지지 않는, 매우 깔끔한 느낌을 준다. 또 짧은 대사와 긴 나레이션으로 희진의 차가운 말투와 여린 마음을 상반적으로 표현한 것도 돋보이는 부분.

<불면증>은 새엄마의 임신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임이 더욱 확실해진 두사람이 어떻게 감정을 추스릴지, 아니면 끝내 감정이 폭발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잠깐 등장한 영호의 학원 선생님이 희진을 보는 심상치 않은 눈길의 의미도 2권에서나 알 수 있을듯.

이희정<동아닷컴 기자> huib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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