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현상은 강남구 개포동 대치동 도곡동 삼성동과 강동구 암사동, 송파구 잠실동 등 서울 강남지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은 지 오래돼 집은 낡았지만 학군이 좋고 주변 생활편의시설이 좋은 강남의 중심지라는 이점 때문에 전세 수요자는 넘쳐난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크게 올라 매매가에 대한 전세금 비율은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 도곡동 등의 집값이 이처럼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것은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쯤 재건축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원구 하계동 청구공인중개사 이용우 사장은 전셋집을 얻으러 왔다가 고민하는 젊은 부부들을 종종 본다. 전세금이 매매가의 90%를 훨씬 넘어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 하계동 벽산아파트 21평형의 경우 매매가 상한이 9000만원인데 전세금 상한은 이 값의 94.5%인 8500만원이나 된다. 500만원만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다. 전세금의 비율이 너무 높아 쉽게 전세를 얻지 못하고 고민을 하는 것.
이처럼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90%를 넘는 곳은 노원구 상계동 하계동, 도봉구 창동 등이다. 하계동 등의 지역에서는 매매가가 오르지 않자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높게 부르고 있는 것. 그렇다고 전세금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쉽게 집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세는 형성되어 있지만 집값이 너무 낮아 팔려는 생각이 안 들어 집을 내놓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
강남과 강북 모두 매물이 부족하고 전세매물도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특히 20평형대나 그 이하의 중소형 아파트가 심하다. 다만 매물 부족의 원인이 강북은 집값이 너무 낮아서 내놓는 사람이 없고 강남은 너무 높아서 살 사람이 없거나 재개발 특수를 노리고 팔지 않기 때문이라는 차이가 있다. 전세 거래가 부진한 이유도 강북은 전세매물이 나와도 매매가에 육박하는 높은 전세금 비율이 부담이 되는 반면 강남은 전세금 비율이 매우 낮아 세입자들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정부가 98년 건설업계 경기 부양을 위해 ‘소형 평형 건축의무 비율’을 폐지한 뒤 소형 평형 아파트의 공급이 크게 줄어들어 ‘품귀현상’으로 이어진 것은 서울 각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