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전문가들이 “내린다”는 말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전문가의 부정적인 견해가 주가를 더 떨어뜨린다며 볼멘 소리를 한다. 전문가도 이런 ‘항의’가 두려워 소신을 감춘 다. 투자자는 결국 주가가 한참 빠진 뒤에야 그 이유를 설명들을 수 있을 뿐이다.
▽금기의 역사〓1988년도 당시 국내 최초의 정식 스트래티지스트라는 칭송을 받았던 한 전문가가 주가 거품론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투자자들은 “주가가 더 빠지면 네가 책임질 거냐”는 욕설을 그에게 퍼부었다. 1991년 한 연구소 연구원이 ‘대공항의 교훈’이라는 보고서에서 당시 주가와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존재할 가능성을 지적하자 증시의 반응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연구원은 투자자의 협박과 히스테리에 못 이겨 장기간 피신했다.
이런 관행은 결국 투자자 피해로 돌아온다. 2년전 대우그룹 부실이 공개됐을 때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미 그 사실을 십수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 공공연한 비밀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결국 개미들만 큰 손해를 봤다.
99년 하반기 코스닥 시장의 활황이 시작했을 때 증시에는 ‘모른다 효과’라는 말이 있었다. ‘닷컴’ ‘텍’ ‘컴’등으로 이름만 붙으면 뭘 하는 회사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아도 주가가 올랐다.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주가가 오른다’는 이 어이없는 현상은 코스닥 시장의 ‘거품’을 용기있게 경고한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현실〓최근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10만원대인 한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에 탐방을 가보면 정말 어이가 없다. 이 시스템으로 어떻게 살아남아 있는지가 신기할 정도”라고 고개를 저었다.
“왜 투자자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느냐”고 묻자 그 애널리스트는 “누구 돌 맞는 꼴 보고 싶으냐”고 반문했다. 특정 회사에 대한 치명적인 의견을 내놓으면 욕설은 물론이고 신변위협의 협박까지 듣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한 코스닥 등록 기업에 대해 “지분 상속 때 세금을 덜 내려고 오히려 주가하락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도 같은 이유로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피해는 결국 투자자 몫이다. 이런 풍토는 결국 ‘내용은 부정적이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정확한 정보를 배척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관련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충고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주식시장은 정보의 시장이다. 제대로 된 정보의 유통은 단 소리 쓴 소리 모두 적절하게 통용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 정보의 올바른 유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절반은 용감하지 못한 전문가들의 책임이며, 절반은 쓴 소리를 배척하는 투자자의 책임이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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