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물의 절규' 들리나요…식약청 '동물실험법' 초안 마련

  • 입력 2001년 6월 20일 18시 51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화학연구원 독성실험실. 쥐, 토끼, 개, 원숭이로 신약 후보물질의 독성을 실험하는 곳이다. 독성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수치사량(LD50)을 알아내는 일. 연구원들은 실험동물에 약물을 주입해 수십 마리 가운데 50%가 죽는 약물의 양을 확인한다. 그래야 실험동물과 몸무게를 비교해 사람에게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는지 계산할 수 있다.

동물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은 원숭이나 개를 실험할때 심적부담을 느낀다(위). 인간을 위해 희생된 실험동물들을 기억하며 매년 한 번씩 올리는 수혼제.

하지만 실험동물들이 일주일이 넘게 고통을 당하며 죽어 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연구자들의 심리적 부담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 연구소는 매년 한번씩 조용히 위령제를 지내 동물들의 넋을 달랜다.“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을 게 확실한 쥐는 골라서 미리 안락사시킵니다. 나처럼 쥐나 토끼로 실험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마음의 부담이 적습니다. 하지만 개나 원숭이로 연구를 하는 연구원 가운데는 괴로워하는 경우도 꽤 있지요.” 이 실험실 L씨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4백 만 마리 가량의 쥐, 토끼, 개, 원숭이가 동물실험에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 바이오산업이 각광을 받으면서 실험동물의 사용량은 해마다 30∼40% 씩 크게 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유전자를 조작한 ‘당뇨병 쥐’‘암에 걸린 쥐’‘미치광이쥐’등 질병모델실험동물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15∼16일 건국대에서 열린 한국실험동물학회 심포지엄이 동물보호단체의 시위 속에서 열린 것. 선진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국내에서 과학자와 동물보호단체가 부딪친 것은 처음이다. 이들 단체는 “한국이 동물실험의 천국”이라며 동물실험의 규제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2주 동안 서울 명동 일대에서 매일 벌이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80년대까지 실험동물을 윤리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법률을 만들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부터 동물실험을 통해 만든 화장품의 판매를 금지시켰다. 실험동물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고통을줄이며,세포실험시뮬레이션인공피부 등의 대체방안을 찾도록 하자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소도 이날 심포지엄에서 한국실험동물학회에 의뢰해만든‘동물실험법’초안을발표했다.이 법안은 실험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실험 뒤 안락사시키며, 동물실험을 하는 대학, 연구소, 병원, 기업은 동물실험위원회를 구성하고 동물실험시설 인증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동물보호단체들은 위원회와 인증제도를 권고가 아닌 의무조항으로 하고, 법률도 실험동물학회가 아닌 정부가 만들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물보호운동을 벌이고 있는 성공회대 박창길 교수는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실험을 하거나, 세균에 감염된 실험동물이 도망치고, 죽은 실험동물을 쓰레기통에 마구 버려 생물재해의 위험까지 초래하는 일이 국내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다”며 “권고 수준의 실험동물법은 있으나마나한 법이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상섭 실험동물학회장은 “동물실험 숫자는 그 나라바이오산업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며“세계적으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10대 국가 대열에 우리가 이제 들어가려 하고 있는 데 동물실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복지국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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