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대학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롭터스 교수와 박사과정 학생 자퀴 피크렐은 17일 열린 미국 심리학회 연례모임에서 조작된 광고를 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억까지 바꾸어버린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디즈니랜드의 광고에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벅스 버니를 등장시켰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수많은 만화영화의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지만 벅스 버니는 결코 만날 수 없다. 홍당무를 문 귀여운 토끼인 벅스 버니는 워너 브라더스사의 캐릭터이기 때문.
그러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1/3 정도가 자신들이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만나 악수까지 나눈 것으로 기억하게 됐다.
롭터스 교수 연구팀은 이번에는 120명의 실험대상자를 네 그룹을 나눠 보다 다양한 상황을 설정했다.
첫째 그룹은 벅스 버니가 포함되지 않은 진짜 디즈니랜드 광고를 보았다. 두 번째 그룹도 같은 광고를 보았지만 인터뷰실에 120㎝ 크기의 벅스 버니 캐릭터 입간판을 세워두었다. 세 번째 그룹은 벅스 버니가 등장하는 조작된 광고를 보게 했다. 네 번째 그룹은 조작된 광고와 벅스 버니 캐릭터 입간판을 동시에 보게 했다.
실험결과 세번째그룹의 30%는 자신들이 디즈니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보았다고 말했으며 네 번째 그룹에서는 40%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연구팀은 조작된 기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식’이 ‘기억’으로 전환되는 것으로 설명했다. 태어날 때 탯줄을 끊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식’이다.
사람들은 디즈니랜드에 벅스버니를 보았을 수 있다는 ‘지식’을 가진 다음 이를 실제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이렇게 가공된 기억은 곧 상품 구매로 이어진다. 디즈니랜드나 맥도널드가 흔히 하는 광고는 주인공들이 그곳을 방문해 멋진 경험을 한다는 식인데 실제 그곳에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사람들도 같은 기억을 갖게 한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