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배우들이 하는 대사가 거의 절반도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뉴스를 들을 때에도, 잘 나가다가 가끔씩 현장 인터뷰 같은 것이 나오기만 하면 알아듣느라고 애를 먹곤 했는데, 이건 숫제 그런 것들만 연속으로 이어서 나오는 것이었다. AFKN 뉴스만 통달하고 나면 영어회화가 다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래서 시작한 ‘영화로 공부하기’. 도시락을 두 개씩 싸가지고, 종로3가의 ‘낙원극장(지금의 파고다 극장)’과 동대문 시장 통의 ‘동대문 극장’에 날마다 출근했다. 하루에 미국 영화를 두 개씩이나 보여주고, 하루종일 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는,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영어교실이었다.
하루에 네댓 번씩 같은 영화를 보고, 대사를 녹음해서 받아쓰기를 했는데, 그게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화면에 글자로 나오는 자막이었다(요즘의 비디오 자막도 마찬가지다). 자막을 보면서 미리 내용을 파악하다 보니까, 잘 안 들리다 보면 자연히 자막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가면서 듣게 되는데, 이 자막이라는 것이 거의 엉터리였다.
한정된 시간과 화면 때문에 자막을 줄여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떤 것은 완전히 얼토당토않은 내용이 쓰여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 실례 한 가지만 들어보자.
(실제로 나오는 영화대사)
Julian: Look, Harvey, I’m having a rough time. As long as I was lying to her, everything was fine. But, the moment I decided to do the right thing and marry her. I’ve had nothing but troubles. You couldn’t believe the complication.
Harvey: Tough.
(자막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줄리안: “미치겠군. 결혼하는 것도 맘대로 안 돼.”
하비 : “맞아.”
이러니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영어로 번역해서 들어봐도 자막과 같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 그래서 영화를 가지고 영어공부 할 때는 먼저 정확한 대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즈음 영화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그저 우리 말 자막만 나오는 비디오를 반복해 보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욕심처럼 그렇게 영어가 많이 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영사기사의 도움을 얻어 처음으로 영화 대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색깔이 누렇게 바랜 대본 한 권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명화 ‘Waterloo Bridge’(애수)였다 (다음 호에 계속).
< 정철/정철언어연구소 소장 www.jungch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