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러시아와 구 소련의 오랜 지배 속에 잊혀졌던 ‘이슬람의 힘’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 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중 ‘맏형’ 격인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이슬람 바람의 진원지다.
99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수도 타슈켄트 중심가의 국립 이슬람대. 하미둘라 카라마토프 부총리가 총장을 맡고 있을 만큼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크다.
압둘하이 압둘라예프 부총장은 “대통령의 모교를 다른 곳으로 이전시킨 자리에 이슬람대를 세운 뒤에도 틈만 나면 이곳을 방문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은 이슬람국가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교(政敎)가 분리된 국가”라면서도 “이슬람은 우리의 역사이며 전통”이라고 강조했다.
타슈켄트 시내 곳곳에는 새로운 메체트(이슬람사원)를 짓거나 보수하는 공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벌어지고 있었다. 올해는 독립 10주년이라 대대적인 시가지 보수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타슈켄트는 먼지와 모래바람으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판 같았다.
독립 당시 우즈베키스탄 전체의 사원 수는 87개. 그러나 10년이 지난 현재는 무려 1700여개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이슬람 최대의 축제인 하지순례에 4000여명이 참가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얼른 보기에도 ‘이슬람의 부흥기’를 맞은 것 같았다.
물론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지원에 힘을 쏟고 있는 데에는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다. 구 소련에서 독립한 뒤 130여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를 통합하는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하려는 측면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탈(脫)러시아’의 바람도 불고 있다. 비행기 기내 방송은 우즈베크어 영어 러시아어 순서로 사용됐으며 타슈켄트 거리의 광고와 간판은 대부분 우즈베크어였다.
반면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베크어를 모르는 소수민족의 당혹감은 커지고 있다. 현지 동포를 위한 문화교육기관인 한국교육원의 주태균(朱泰均) 원장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우즈베크어 강좌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이 나라의 이슬람은 정통적인 아랍국가의 시각에서 보면 세속적이다. 이슬람대 1년생인 아흐메도프 우바야둘라는 “금주 금연 등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지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층은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다. 택시 운전사 카밀 라슈이모프는 “일 때문에 예배에 거의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내가 ‘무슬만(이슬람교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고 당당하게 말했다. 기자를 안내한 한 현지인은 대낮인데도 거리낌없이 보드카를 물 마시듯 들이켰다.
이 같은 일탈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이미 생활 전반에 거대한 문화체계로 자리잡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 실크로드의 핵심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이곳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원인 ‘비비-하님’을 비롯해 신학교인 ‘메드레세’ 등 화려한 이슬람 유적이 남아 있었다. 7∼8세기 이슬람 상인에 의해 실크로드를 타고 중앙아시아로 전파된 이슬람은 14세기 이곳에 근거지를 둔 티무르제국 때 꽃을 피웠다.
요즘 사마르칸트는 미국 유럽 등지의 관광객들이 몰려 붐비고 있다.
사마르칸트의 한 사원의 물러(종교지도자)인 우스타포쿨 매니코프도 “이슬람은 누구도 억압해서는 안된다”며 관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아그잠호다예프 사이다크바르 이슬람대 교수는 “중앙아시아 이슬람은 교리보다는 전통에 충실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온건파인 수니파가 다수이다 보니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한 반면 슬라브정교 등 타종교에는 너그러운 편이라는 것.
중앙아시아 이슬람의 부흥은 바깥이 아닌 종교 내부의 갈등이란 역풍을 맞고 있다. 인접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에서 근본주의 세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 빈민 등 소외계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근거를 둔 과격파 무장세력인 탈레반의 지원도 받고 있어 중앙아시아 일대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이 14일 러시아 중국 등과 집단안보체제인 ‘상하이협력기구’를 발족한 것도 이에 대응하려는 뜻에서다.
타슈켄트·사마르칸트=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이슬람 호드자예프 대외경제부 차관 인터뷰▼
우즈베키스탄 대외경제관계부 하산 이슬람호드자예프 차관은 “정부는 국가주도의 경제발전과 사회 보장 유지, 점진적 개혁 등의 원칙 아래 경제 개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방 세계로부터 너무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에는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던 러시아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물가폭등이나 빈부 격차, 국민생활수준 폭락 등의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에너지와 식량 자원이 풍부한 점도 도움이 됐다.
그는 “실크로드가 지나가던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적 전통을 살려 3대 신(新)실크로드를 복원시켜 경제발전의 디딤돌로 삼겠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을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철도와 항공운송 광케이블이 지나가는 중심으로 삼겠다는 것. 실제로 타슈켄트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화물기의 중간 기착지로 자리 잡았으며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중국∼키르기스스탄∼그루지야로 연결되는 철도 노선은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슬람호드자예프 차관은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하겠다”며 한국기업의 우즈베키스탄 진출을 당부했다.
▼개요▼
면적 44만7400㎢
인구 2430만명
민족 구성 우즈베크인 71.4%, 러시아인 8.3%, 타지
크인 4.7%, 한국인 1%(약 22만명)
언어 우즈베크어(국어) 러시아어
종교 이슬람(90%) 슬라브 정교(8%)
정부 형태 대통령중심제
수도 타슈켄트(인구 약 250만명)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1인당 GDP 304달러(99년)
▼약사▼
BC 500년경 소그드인 정착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 침공
7∼8세기 아랍인 진출
12세기 칭기즈칸 침공
14세기 티무르 제국 건설
1867년 러시아, 사마르칸트 점령
1895년 러시아, 영국과 중앙아시아 분할지배
1924년 스탈린, 중앙아시아 민족소비에트 수립 결정
1925년 소련 일원인 우즈베키스탄사회주의공화국 출범
1991년 소련 해체로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