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신용보증재단 前이사장 진정서 공개 파문

  • 입력 2001년 6월 25일 18시 33분


서울시의회 사진(위쪽) 보증 브로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시위성' 안내문
서울시의회 사진(위쪽) 보증 브로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시위성' 안내문
서울시의회 일부 의원의 산하기관에 대한 대출 청탁과 찬조금 요구를 둘러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시의원의 보증 청탁 압력설을 제기하며 갈등을 빚어오다 최근 해임된 엄기염 전 서울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은 25일 “일부 시의원들이 보증 청탁뿐만 아니라 갖가지 행사를 구실로 시 산하기관에 간접적으로 금품을 요구해 왔다”며 검찰에 낸 진정서와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청탁과 찬조금 요구”〓엄 전이사장은 “시의원들이 외유를 떠나거나 야유회, 세미나 때마다 안내문을 시 산하기관에 보내 암묵적으로 찬조금을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산하기관에 알아보니 ‘찬조금을 요구하는 것이니 20만∼30만원 정도 보내주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매번 이 같은 액수의 ‘찬조금’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찬조금 요구는 ‘현금 처리’가 쉽지 않은 본청보다는 상대적으로 현금 확보가 쉬운 시 산하기관과 사업소 등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엄 전이사장은 브로커의 부탁을 받고 보증 압력을 행사한 이모 의원을 비롯해 재단에 상습적으로 보증 청탁을 해온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의원Y모 의원 등 4명을 조사해 달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우송했다. 재단측은 시의원의 청탁으로 보증을 서준 N기업이 부도를 내 1억 3000만원의 부실채권이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진정서에는 일부 의원들이 커미션을 받고 보증을 알선해 온 브로커와 관련됐다는 의혹과 함께 이들 의원의 명단이 들어 있다.

엄 전이사장은 “의원들이 실무자들에게까지 직접 전화를 걸어 집요하게 대출 독촉을 하는 등 ‘부탁’ 차원을 넘어 ‘압력’을 행사했다”면서 “비협조적일 경우에는 과도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의회에 출석시켜 장시간 대기하도록 하는 ‘벌서기’를 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입장〓시의회는 지난달 30일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대해 39가지 항목에 걸쳐 3개월 간의 행정사무조사를 요구했으며 이를 거부한 엄 전이사장의 해임을 시에 요구했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덜기 위해 설립한 재단의 보증실적이 떨어지는 등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 그러나 이들이 요구한 자료목록에는 재단이사장의 공채 기준과 채점 기록, 재산등록 사본, 연봉 산정명세와 기준 등 재단의 보증업무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어 엄 전이사장측은 ‘보복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양경숙(梁敬淑) 재정경제위원장은 “몇몇 의원이 지역구민의 민원해결 차원에서 부탁 전화를 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재단의 보증 실적이 저조한데다 보증절차가 까다롭고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많아 행정사무조사를 요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위원장은 또 “외유나 야유회 등을 포함해 의회의 모든 공식일정을 시와 산하기관에 보내는 것이 관례이며 금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입장〓서울시는 20일 시의회의 행정 사무조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잔여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엄씨를 해임했다. 시 관계자는 “시장이 직접 나서 행정사무조사를 받을 것을 권고했으나 엄 전이사장이 법적 근거가 없는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며 “재단 이사 6명 중 5명의 찬성으로 해임을 결정한 만큼 법적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 주변에서는 서울시가 의회와의 관계악화 등을 우려해 그를 해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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