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 이야기]지표는 좋아진다만…

  • 입력 2001년 6월 25일 18시 48분


올해 증시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단어 가운데 하나는 ‘하반기’다.

증시 전망이 하반기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전체 경제 전망도 마찬가지였다. 경제 관련 부처장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쳐왔다.

벌써 6월말. 정부가 장담한 하반기가 코앞에 닥쳤지만 경기 회복 시점을 자신있게 점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내외 여건이 예상밖으로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외 여건을 보면 일본 미국에 이어 유럽쪽에서도 침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2분기, 3분기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독일발 ‘침체 경보’는 유럽 전역으로 번져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상황도 여전히 답답하다. 반도체만 봐도 그렇다. 하반기에는 회복되리라고 믿었던 반도체 경기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 오히려 사상 최악의 침체마저 예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체 수출도 계속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고 있느 추세다.

이상한 점은 상황이 이런데도 경제 주체들의 기대심리는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소비자 기대지수는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상승했다. 기업인들의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2분기 92에 이어 3분기는 103으로 높아졌다.

왜 그럴까. 정부가 ‘하반기에는 경기가 회복한다’고 계속 반복해 집단 최면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통계 수치의 착시 현상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어음부도율을 예로 들 수 있다. 0.21%로 10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정부의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으로 대기업의 부도 우려가 사라져 협력업체들의 부도율도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됐다기보다는 비상대책 덕택이라는 것. 실업률도 지난달에는 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공공근로 20만명이 취업자로 분류된 탓이다.

제주도에 가면 ‘도깨비 도로’라고 불리는 신기한 도로가 있다. 분명 내리막길에 차를 세웠는데도 아래로 내려가야할 차가 오히려 반대로 올라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착시 현상 때문이다.

혹시 우리 경제도 여전히 내리막길에 있는데 정부가 조장한 착시현상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객관적이고 냉정한 전망이 나오기를 사람들은 기대한다. 정부의 호언장담에 아무런 대비도 없는 상태에서 금융위기와 증시폭락을 겪었던 경험을 또다시 반복하기는 싫기 때문이다.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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