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부총리 한마디에…

  • 입력 2001년 6월 26일 18시 42분


현대건설이 발행하는 전환사채(CB)의 인수문제를 놓고 하나은행은 현대건설의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만약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CB가 있을 경우 채권단이 인수하자’는 외환은행의 제의에 대해 하나은행측은 절대 못하겠다고 버틴 것. 한마디로 현대건설에 더 이상 자금을 댈 수 없다는 얘기였다.

급기야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25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 문제는 3월 채권단의 채무조정안에 없었던 내용으로 대주주인 알리안츠와 국제금융공사도 반대하고 있어 참여가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금융권은 김 행장의 이날 공개발언에 대해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말아달라’는 선긋기로 해석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수익성 위주로 경영하지 않으면 퇴출되는 세상에서 하나은행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경하게 버티던 하나은행은 26일 돌연 “CB를 인수하겠다”고 물러섰다. 행장의 공언이 왜 단 하루만에 뒤집혔을까?

25일 저녁에 있었던 하나은행 창립 30주년 기념리셉션에 참석한 진념 부총리의 발언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금융가의 풀이다.

진 부총리는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재출범할 때 윤병철 당시 행장에게 ‘하나’라는 상호의 뜻을 물었다. 윤 행장은 ‘으뜸은행이 되겠다는 뜻도 있고 고객 및 국민과 하나가 되며 국가경제와 함께 하는 은행이 되겠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우리 경제가 여러 가지로 어렵다. 은행출범 당시의 뜻을 되살려 나라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하나은행이 적극 나서달라.”

누가 들어도 현안인 ‘현대건설 문제해결을 도와달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민간은행의 상업적 판단이 부총리의 말 한마디에 뒤집히는 일이 계속된다면 결국은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부실은행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은행 한 실무자의 말이다.

허승호<금융부>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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