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CB가 있을 경우 채권단이 인수하자’는 외환은행의 제의에 대해 하나은행측은 절대 못하겠다고 버틴 것. 한마디로 현대건설에 더 이상 자금을 댈 수 없다는 얘기였다.
급기야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25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 문제는 3월 채권단의 채무조정안에 없었던 내용으로 대주주인 알리안츠와 국제금융공사도 반대하고 있어 참여가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금융권은 김 행장의 이날 공개발언에 대해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말아달라’는 선긋기로 해석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수익성 위주로 경영하지 않으면 퇴출되는 세상에서 하나은행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경하게 버티던 하나은행은 26일 돌연 “CB를 인수하겠다”고 물러섰다. 행장의 공언이 왜 단 하루만에 뒤집혔을까?
25일 저녁에 있었던 하나은행 창립 30주년 기념리셉션에 참석한 진념 부총리의 발언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금융가의 풀이다.
진 부총리는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재출범할 때 윤병철 당시 행장에게 ‘하나’라는 상호의 뜻을 물었다. 윤 행장은 ‘으뜸은행이 되겠다는 뜻도 있고 고객 및 국민과 하나가 되며 국가경제와 함께 하는 은행이 되겠다는 뜻도 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우리 경제가 여러 가지로 어렵다. 은행출범 당시의 뜻을 되살려 나라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하나은행이 적극 나서달라.”
누가 들어도 현안인 ‘현대건설 문제해결을 도와달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민간은행의 상업적 판단이 부총리의 말 한마디에 뒤집히는 일이 계속된다면 결국은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부실은행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은행 한 실무자의 말이다.
허승호<금융부>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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