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내가 실수를 하다니…"

  • 입력 2001년 6월 26일 18시 47분


30대 초반의 강모씨. 요즘 잠을 잘 못 잔다. 벌컥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도 자주 느낀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된 건 얼마전 술자리에서의 사건 이후부터다.

평소 술 조심을 하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술이 잘 받았다. 덕분에 평소 주량보다 꽤 많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술에 취해 평소 자기에게 잘해주는 상사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해댄 것이다. 그날 따라 대화도 잘 풀려 멋지게 자기 주장을 펴고 있는데, 그 상사가 말머리를 자르고 한마디 충고를 한 게 발단이었다. 그 순간, 어째서 그토록 갑작스럽게, 그토록 미친 듯이 화가 났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술자리는 엉망으로 끝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깼을 땐 죽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천만다행하게도 상사는 “뭐 술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하며 너그럽게 사과를 받아주었다. 동료들도 “어, 생각보다 꽤 터프하던데”하는 정도로 덮어주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자기에게 중요한 직장상사와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든 데 대한 두려움도 컸다. 그래서 요즘엔 일에도 의욕을 못 느낀다. 다른 회사로 갈까도 싶지만 그 소문이 따라다닐까봐 엄두를 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잠도 못 자고 혼자 중얼거리고 충동적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늘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겁내며 살아간다.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 그것에만 초점을 맞출 때도 많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오늘 만난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했는지,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하는 것들을 되돌아보느라 잠 못 이룬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덜컥 실수라도 한 날에는 그 순간부터 그야말로 악몽이 시작되는 것이다. 완벽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하다. 그 이유는 물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수를 하다니, 죽고 싶을 만큼 좌절감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중에 완벽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다들 실수하고 넘어지며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단, 실수했을 때 자신의 실수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는 정도의 유머감각은 필요하다. 남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큰소리로 고백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무리 엄청난 비밀도 공개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듯이 실수도 마찬가지다. 공개하고 나면 더 이상 창피한 것이 아니다. 단, 가능한 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죽는 날까지 실수하면서 배우고 성장해 가는 것이 우리의 삶 아니던가.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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