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7년만에 밝혀진 의문사 진상

  • 입력 2001년 6월 26일 18시 51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84년 청송교도소에서 숨진 박영두(朴榮斗)씨의 사인(死因)이 당초 당국에 보고된 심장마비가 아니라 교도관들의 집단폭행이었다고 엊그제 공식 발표했다. 박씨는 재소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다 교도관들로부터 이른바 ‘비녀꽂기’ 등 온갖 고문을 당한 뒤 숨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독재정권 시절 공권력의 고문치사를 확인한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난해 12월 한 교도관의 제보로 조사가 시작돼 공권력에 의한 박씨의 억울한 죽음과 당국의 사건 은폐과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는 과거 우리의 참담한 인권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사실 박씨가 계엄군에 연행돼 청송교도소에서 숨지기까지의 과정은 도무지 국가권력의 법집행이라고 볼 수 없다. 박씨는 불량배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뒤 육군감호소로 이송됐고 군사법정에서 징역15년을 선고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재소자에 대한 ‘사람 대접’을 요구하다가 죽을 때까지 고문을 당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도 박씨를 죽음으로 내몬 4명의 교도관과 지휘책임자들은 정권이 몇차례 바뀌어도 끄떡없었다. 박씨가 숨진 뒤 동료 재소자들이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교도소에서 집단난동을 벌이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고 검찰도 재소자들의 고발을 외면했다고 한다.

독재정권 시절 ‘의문의 죽음’은 비단 박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인이 석연치 않은 경우는 물론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람도 적지 않다. 그 유족들의 피눈물나는 호소로 지난해 의문사진상규명위가 발족했고 73년 당시 안기부에서 숨진 서울대 최종길(崔鍾吉)교수 사건 등 80여건의 의문사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비록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독재권력의 인권침해 사례를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도 의문사의 진상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상규명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조사기간이 너무 촉박하다. 현재 사건접수 6개월 안에 1차조사를 마치고 필요하면 3개월을 연장하도록 돼 있으나 압수수색권도 없는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역사에 묻혀 가는 사건을 9개월만에 조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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