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앞머리의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허구’라고 밝혔듯이 “이 줄거리의 가능성도 온전히 ‘허구’였으면 좋겠다”고 정효신씨(41·사진)는 말한다. 정씨는 91년부터 정보기술(IT)을 소재로 소설을 써왔다. IMT-2000을 소재로 한 ‘황금시장의 지배자’는 이달 출간된 최근작.
“국가경제의 방향을 가르는 국책사업이 해외자본의 투기장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에서 줄거리를 구상했어요. 사업자선정을 둘러싼 정부 정치권 재벌 해외투기자본의 움직임을 다룬 것이죠.”
수뢰 혐의를 받은 여주인공 장신영이 누명을 벗는 과정과 검은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이 이어진다.
“상류사회의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국책사업, 거대기업, 대규모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하죠. 이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갖지 않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에요.”
정씨는 신영의 입을 빌어 ‘외자를 들여와 계열사를 지원하고 부동산 투기에 쏟아 부었다가 정치권 입김으로 은행에서 돈빌리고 국민세금으로 메꾸는 악순환’을 꼬집는다.
“외자 유치의 기본 목적인 기술개발은 사라지고 외국기업과 해외자본으로 줄줄 돈이 흘러가는 일도 사실 많았잖아요.”
정씨는 경제적인 의미외에 다른 점에서 IMT-2000에 거는 기대가 크다.
“얼굴 보고 통화한다고 ‘투명한 사회’가 오냐구요? 저는 종종 사람의 힘만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기술’이 변화의 탄력을 준다고 믿어요. 인터넷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넓힌 것처럼 IMT-2000은 ‘투명성’을 촉진시킬 거에요. 음식배달 주문할 때 ‘주방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간단한 예고요.”
정씨는 정보기술 관련 연구소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많다. 이 소설도 지난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진행한 ‘IMT-2000의 영향’이라는 미래전략 프로젝트가 기반이 됐다.
“아까 ‘허구’라고 했잖아요. 신영의 모델이 되는 실존 여성인물은 사실 없어요. 줄거리의 구성상 여성이며 치밀하고 똑똑한 캐릭터여야 했죠.”
정씨는 주인공을 통해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다고 했다.
“검찰에 끌려가면서 신영이 ‘이건 천재지변이야’라고 되뇌죠. 천재지변은 도전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당하는 것이잖아요. 여성이 겪는 많은 부당한 일을 일단 천재지변이라 생각하면 현실이 차분하게 보여요. 비겁한 것과는 다르죠. 인정하고 싶지 않은것까지 상황을 바로 보게 하는 거죠. 행동은 그 다음에 하는 거에요.”
소설이니만큼 신영과 시원의 러브스토리가 등장하지만 별다른 갈등구조는 없다. 투기자본과 정경유착의 음모가 드러나는 과정은 다양한 주체가 적절히 얽혀있어 치밀하다. 다음 단계가 어느정도 예측가능해 ‘반전’이 주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흠.
<김승진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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