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실패학'은 성공의 어머니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25분


일본에서는 도쿄대 공대 교수인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의 ‘실패학의 권유(2000년)’가 올해 상반기에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실패학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실패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이다. 그러나 실패를 은폐하면 동일한 실패를 되풀이하거나 더 큰 실패를 하기 마련이다. 우리의 주변에서 반복되는 실패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속성을 이해하여 극복함으로써 실패를 새로운 성공의 토대로 삼자는 취지로 제안된 것이 실패학이다.

실패에는 그 나름의 법칙성이 있다. 이른바 ‘실패의 하인리히 법칙’이다. 하나의 큰 재해에는 경미한 상처를 입히는 가벼운 재해가 29건 들어 있고 29건에는 인명 피해가 없지만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 300건 존재한다. 1 대 29 대 300 법칙으로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이다. 잠재적인 재해가 현실로 나타날 확률을 보여주는 경험 법칙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큰 실패가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다. 이러한 전조를 알아내 적절하게 대응하면 큰 실패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실패의 전조를 무시해 일어난 대형 참사의 대표적 사례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손꼽힌다. 백화점 직원들은 건물 붕괴(1) 전에 나타난 붕괴 조짐에 대해 수십 차례 경고(29)를 했다. 이 백화점은 부실 건축물이었다. 구조적인 건축 하도급 비리 사슬 때문에 철근과 콘크리트에 들어가야 할 비용이 뇌물로 둔갑해 시공업자와 공무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이다(300). 요컨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실패가 커다란 형태로 나타날 때는 30가지 정도의 작은 실패가 이미 있었으며 사고 직전에는 300가지의 징후가 보인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무시해서 일어난 인재이다.

실패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처럼 부주의나 오판 때문에 발생하는 나쁜 실패가 있는가 하면 에디슨이 신제품을 발명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한 것처럼 성공을 일구어낸 좋은 실패가 있다.

실패학의 목적은 실패의 경험을 분석해 누구나 학습할 수 있는 지식으로 체계화해서 나쁜 실패는 재발을 예방하고 좋은 실패는 창조의 씨앗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실패학의 성패는 실패를 은폐하기보다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문화의 조성 여부에 달려 있다.

실패문화가 가장 잘 구축된 나라는 미국이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를 계기로 미국 사회는 실패를 자인하고 실패 분석을 통해 실패를 살려내는 능동적인 문화를 만들었다. 예컨대 실패를 법률적으로 취급하는 사법거래 제도를 갖추었다. 실패 당사자에게 면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실패의 진상을 밝히도록 하는 법 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실패의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동시에 병행하면 실패의 당사자가 형사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패 원인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별도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방법 중의 하나가 미국의 사법거래 제도인 것이다. 이 제도에 따라 책임 추궁을 면하게 된 당사자는 실패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사법거래 제도가 실패의 진상 해명에는 효과적이긴 하지만 사회정의의 차원에서는 반드시 공평한 제도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의도적이거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실패에는 엄격하게 중벌을 가한다. 예컨대 징벌적 배상제도를 통해 악질적인 실패를 저지른 기업에 보험금으로 배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벌금을 부과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사법거래 제도나 징벌적 배상제도의 목적이 좋은 실패는 살려내고 나쁜 실패는 예방하는 데 있음은 물론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형 비리를 놓고 국회 청문회에서 이러쿵저러쿵 입씨름을 일삼는 우리네 풍토에서 미국의 실패문화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한때 다리와 아파트가 무너지고 큰불이 나 애꿎은 서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고공화국이었으며 전직 대통령에서부터 벤처사업가에 이르기까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실패공화국이었다. 실패학의 요체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에 함축돼 있다. 우리 사회도 일본의 실패학 연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되지 않을까.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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