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동우/아빠 회사는 부도덕한 언론?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25분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그 결정판으로 평가하고 있는 87년의 ‘6·10민중항쟁’을 생각할 때마다 기자는 엉뚱하게도 딸아이들의 어린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가슴에는 당시 어린 딸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파고들곤 한다.

돌이켜보면 20년 가까이 된 기자생활 중에서 그 때만큼 고되면서도 보람찬 나날을 보낸 적은 없었다. 권위적인 독재정권이 그 마지막 나날을 이어가고 있을 당시 집권세력은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던 때였다. 그 해 초부터 시작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그 뒤 연일 계속되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시위로 기자는 일요일을 집에서 쉰 적이 거의 없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고 있던 연년생인 딸아이들은 다른 집 아빠와는 달리 일요일에 한번도 같이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러워 휴일 아침이면 회사로 나가는 기자의 앞을 가로막곤 했었다. 그때마다 아이들을 달래며 써먹었던 말이 있다.

“아빠가 나가서 나쁜 사람들을 말리고 혼내주어야 해. 아빠가 가지 않으면 착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될 거야. 아빠가 너하고 놀아주지 못해도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괜찮지?”

그랬다. 그 때 우리는 그런 자세로 부도덕한 군사독재 권력의 치부를 취재하고 보도했다.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와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분노하고 투쟁했었다. 때로는 안기부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는 등 위협도 적지 않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고 동아일보 기자들말고는 이 일을 대신 할 사람이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회사는 당시 정권측의 온갖 압력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취재해 온 것을 축소하거나 묵살하지 않았다. 기자들의 가슴에는 열정과 순수가 있었고 회사는 역사에 대한 소명감을 갖고 있었다.

당시 김중배 논설위원(현 MBC 사장)이 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로 시작되는 칼럼과 황열헌 기자(현 문화일보 논설위원)가 쓴 ‘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비는 아무 할말이 없데이’라는 박군 장례식을 다룬 ‘창’ 기사는 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되며 온 국민에게 슬픔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해 5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채택한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주장’이라는 제목의 시국성명은 그 뒤 수많은 언론인과 교수들의 시국성명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로 이어진 것이 6·10 민주화 항쟁이었다. 그 뒤 많은 세월이 지나 당시 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했던 분이 지금은 대통령이 되어 있다.

다시 이야기를 딸아이에게로 돌아가자. 이제 고교 3학년이 되어있는 큰딸이 물었다. “아빠회사가 민주주의와 개혁을 거부하는 부도덕한 언론기업이 맞느냐”고. 그 당시 까만 눈망울을 깜박이며 아빠의 변명에 고개를 끄떡이며 아쉬움을 접던, 유치원생이었던 딸아이에게 작금의 분위기는 혼돈과 의혹 그 자체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요즘 정부발표와 여당의 목소리, 그리고 방송매체와 일부 군소신문들의 보도를 보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은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천하의 부패집단인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독재권력에다 탈세를 일삼고 파렴치한 악덕 족벌 사주에 의해 조종당하는 조폭적 언론이며….

과연 이렇게 해도 좋은 것일까. 일부 언론이 주장하고 있는 소위 조폭들조차도 상대를 이런 식으로 상스럽게 다루지는 않는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존중할 것은 존중할 줄 안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언론의 기본자세이자 창간이래 동아일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정권을 비판했다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기는커녕 비판언론을 이런 식으로 매도해도 되는 것인가.

방송과 일부 언론, 그리고 정치인들도 그렇다. 우리가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민주화의 초석을 놓으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던 바로 그 때 그들은 무엇을 보도했고 지금 언론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여당의 김중권 대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고싶다. 그동안 진보를 자처해 왔던 특정신문과 가장 보수적인 친여신문들이 현 정권 들어 같은 노선을 걸으며 동아, 조선 흠집내기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현실은 바로 이 시대의 코미디라는 지적도 있다.

다들 역사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자.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가자.

정동우<사회부 부장대우>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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