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생짜 신인에게 대사나 표정 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려한 조명과 쉴새없이 돌아가는 카메라가 너무 낯설었다.
다행히 연출자였던 김종식 감독님이 “처음이니 실수하는 건 당연하다”며 용기를 주셨고 유치원 원장으로 출연하던 김용림 선배님이 친절하게 연기 지도를 해 주셔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당시 부담이 됐던 건 연기만이 아니었다. 크리스천에다 술을 전혀 못하던 나는 촬영을 마치고 열리는 회식에서 술을 피해 다니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늘같은 선배들이 권하는 술잔을 매번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미움 아닌 미움도 많이 샀다.
그래도 나는 까마득한 후배로서 기본 예의를 지키려고 애썼다. 매일같이 방송국 스튜디오 앞에서 커피포트를 들고다니며 연기를 마치고 나오는 선배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이런 정성이 통했는지 나는 좋은 드라마에 연이어 캐스팅됐다. 93년 KBS 주말극 ‘연인’에서 동시통역사 역을 맡았을 때는 영어 개인교습을 받으며 밤을 지새웠다. 94년 KBS ‘세 남자 세 여자’에서는 뚱뚱하고 못생긴 추자로 변신하기 위해 몸무게를 4kg이나 불리고 옷을 여러 개 겹쳐 입은 채 촬영에 임했다.
특히 ‘세 남자 세 여자’에서 못난이 추자가 인기를 얻으면서 11회까지만 인조 코를 붙이기로 했던 것을 29회까지 늘이느라 코 주변의 피부가 엉망이 됐던 기억이 난다.
어느덧 방송 데뷔 11년째.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연기의 폭도 넓혔고, ‘가족 오락관’ ‘TV는 사랑을 싣고’의 MC를 맡아 진행에도 맛을 들였다. 교회 후배 때문에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간 것이 오늘의 전혜진을 있게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