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업주부 아내들은 남편의 출장에 동행해서 해외지사 직원 아내들과 시간을 보내며 직원들의 속내를 알아내기도 하고, 남편이 중요한 파티에 나가기 전에 그곳에서 만나게 될 거래처 파트너의 아내와 아이들 이름을 귀띔해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남편의 이미지를 부드럽고 인간적인 것으로 가꿔주는 훌륭한 조력자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상층부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한 소수의 여성 최고경영자들과 중역들의 경우에는 어떨까. 기자는 남녀 고위급 중역들과 인터뷰를 해본 결과 ‘남성 최고경영자는 자신을 내조하는 아내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기업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아내’의 몫까지 해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휴렛팩커드의 칼튼 피오리나 회장과 엑소더스 커뮤니케이션즈의 엘렌 핸콕 회장 등 기업에서 성공한 많은 여성들의 남편이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는 이 남편들이 장거리 출장이나 부부동반 파티, 리셉션 등에 아내와 동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실제로 아내의 모임에 참석해서 아내의 거래처 파트너인 남성 기업가의 아내들과 자리를 같이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은퇴하기 전 나름대로 이미 성공을 거뒀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아내들처럼 인생의 회의에 빠져드는 경우도 드물고, 아내를 외조하는 ‘비전통적인’ 역할에도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 자신이 인생에서 성취한 것에 만족하고 있어서 더 이상 남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이들의 ‘외조’는 전통적인 아내들의 내조와는 비교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20여명의 여성 기업가들은 한결같이 남편이 자신들을 잘 이해하고 도와준다고 말했다. 남편들이 이미 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아내가 제공할 수 없는 또 다른 도움을 자신들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전업주부 아내를 가진 직장 동료들과의 경쟁에서는 자신들이 크게 불리한 입장임을 모두 인정했다. 지난해까지 석유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의 부회장이었던 마리 놀즈는 기업이 전통적인 아내들의 무보수 내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서 자기 혼자 힘으로는 기업의 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은퇴해서 아들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요즘 생활이 “지극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째서 기업문화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걸까. 1979년에 ‘기업가 아내의 변화하는 삶’이라는 책을 출판해 큰 호응을 얻었던 마리안 밴더벨드는 이 책에서 여성중역들이 늘어나면 기업문화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최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희망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크리스마스 파티나 회사 야유회 등 기업가들이 참석해야 하는 사교적 모임의 성격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http://www.nytimes.com/2001/06/24/business/24HUSB.html)
<연국희기자>ykook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