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는 일제하 나라 잃은 민족에게 반일 민족독립정신을 고취하면서 무수한 압수수색과 정간, 편집간부들의 구속과 정간 폐간 등 온갖 핍박을 견뎌내며 오늘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의 터전을 마련했다. 해방 후에는 좌우갈등을 타넘고 민주국가 건설에 기여했고 자유당 시절 반독재투쟁을 거쳐 70년대 유신정권에 저항, 민주화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이런 신문사를 하루아침에 탈세와 불공정거래의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이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언론이라고 해서 범법에서 면제되거나 성역일 순 없다. 그러나 세무조사와 처벌도 다른 분야의 개혁에 비춰 공정성과 형평성, 비례성과 보충성 원칙에 따라야 설득력을 갖는다. 국세청이 중소기업 매출밖에 안되는 언론사들에 1000여명의 전례 없는 대규모 조사요원들을 투입, 4개월이 넘는 장기간 초고강도 정밀조사를 하고 5000여억원의 추징금을 물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이 자유언론을 제약, 위축 또는 말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이런 무모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으로 누구나 믿는다. 이런 천문학적 추징금을 물고도 과연 어떤 언론이 생존할 수 있겠는가. 설사 살아남는다 해도 서슬퍼런 권력 앞에서 주눅이 들어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언론의 기본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회 여타 부문과 함께 언론도 물론 개혁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개혁은 어디까지나 언론자율에 맡겨야 한다. 이것이 미국 등 모든 서구민주국가들의 자유민주적 원칙이자 관행이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판매 등 불공정 거래행위 등에 개입하지 않고 신문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개혁의 우선순위도 틀렸다. 개혁은 언론보다 정치권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가령 청와대와 정당, 국회와 공공부문 등이 최우선적으로 개혁돼야 할 대상이다. 집권당 초재선 의원들이 몇차례 내부 인적청산 등의 개혁을 요구해도 청와대와 집권당은 무응답이다. 이런 행태는 집권당이 자기개혁 불감증에 걸려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증거다.
집권당은 오히려 살판이라도 난 듯 몇몇 비판신문들에 대한 공격에 연일 열을 올리고 있다. 자기 눈 속의 대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 속의 티끌만 트집잡는 격이다. 주객이 전도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언론 세무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언론 길들이기, 재갈 물리기 징벌과 보복적 차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지각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국민은 그동안 나타난 일련의 대언론 정부행태를 보고 이를 판단할 수 있다.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밝힌 대통령 연두회견을 신호탄으로 집권당 간부들의 빈번한 대언론 비판발언과 고강도 세무조사,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신문고시 부활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80여년에 걸쳐 피땀 흘려 키워놓은 한국의 언론자유는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 중과세로 언론기업이 압살당할 찰나인데 언론자유가 건재할 수 있을까.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언론자유 없는 곳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인류역사가 독재와 공산권력에 대항해 언론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것도 이 때문이다.
1776년 미국 버지니아주 권리장전 12조는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의 방벽으로서 이 자유를 제한하는 정부를 전제정부로 규정했다. 미국 수정헌법 1조와 프랑스혁명 인권선언 11조도 언론자유를 가장 귀중한 자유로 간주, 이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모든 역사적 문서들이 왜 이처럼 언론자유를 금과옥조로 받들고 있는지를 집권세력은 깨달아야 한다.
언론자유가 위축되거나 말살되면 인간의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견제받지 않는 정권은 권위주의로 돌변할 것이고 국가의 성장 발전도 퇴행하고 말 것이다. 우리 체제가 북한 공산독재체제와 구별되고 우월한 것도 언론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언론이 당하고 있는 일대위기를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언론자유만은 살리는 방향에서 슬기로운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
우리 역사는 해방 후 역대정권 가운데 언론자유를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억압, 말살한 독재자와 그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영무(언론인·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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