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남경희/교사를 잡무에서 해방시키자

  • 입력 2001년 6월 29일 18시 33분


학교가 날로 비대해지고 있다. 현대 산업사회로 축을 옮기는 과정에서 가정교육과 지역사회 교육의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학교교육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학교는 본래의 임무 외의 많은 짐을 떠안게 되었다.

교사의 본래 임무는 당연히 훌륭한 수업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재연구가 필수적이다. 교재연구를 위해서는 학교가 슬림(slim)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좁은 의미의 잡무인 교육부 등 관련기관으로부터 하달되는 각종 공문 처리를 비롯해 넓은 의미의 잡무인 청소년 단체 활동, 각종 감사나 평가 등의 규제가 여전히 학교와 교사를 옥죄고 있다. 여기에 교단선진화 작업의 일환으로 학내전산망 운용과 같은 일로 교원의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기만 한다.

학교가 비대화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교육여건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여건을 개선하지 않은 채 선진국형 교육의 이상만을 도입하면 그 짐은 학교와 교사에게 몽땅 떠넘겨진다.

둘째, 사회가 해야 할 일을 학교가 떠맡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가 떠맡아야 할 행사나 활동이 학교교육의 몫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아람단 등의 청소년 단체 활동은 학교와 교사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우고 있다.

셋째, 학교를 힘없는 하부 말단기관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활동하는 유기체이지 결코 행정의 하부 말단기관이 아니다. 학교나 교사는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하달되는 각종 공문을 처리하거나 규제 일변도의 평가나 감사를 받기 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교의 슬림화가 요청된다.

진정으로 여유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살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이상 실현도 우리의 교육현실에 맞게 추구해야 한다. 7차 수준별 교육과정의 시행을 둘러싼 문제도 현실과의 괴리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청소년 단체활동 등 지역사회가 맡아야 할 교육은 지역사회로 환원해야 한다. 특정단체가 맡아야 할 활동을 학교가 떠안고 신음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각종 공문은 학교운영위원회 등 권위 있는 기관이 적정한 기간을 정하여 그 필요성을 사후 심사해야 한다. 불필요한 공문을 발송하였을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공문생산자에게 경고하도록 하고 누적될 경우에는 처벌까지 요구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제재가 없기 때문에 관련 기관들은 행정편의만을 생각하고 학교에 함부로 공문을 발송한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요구되는 교육은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힘과 창의력이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불필요한 살을 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와 교사가 병들어 가게 된다. 관계기관은 학교의 슬림화를 위한 대책과 방안을 실효성 있게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남 경 희(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