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키조개탕

  • 입력 2001년 6월 29일 19시 47분


◇ 속앓이 어루만지는 ‘西海부인’

키조개란 키(箕), 즉 곡식의 쭉정이를 까불리는 그 키(챙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연근해의 수심 20~50m의 뻘모래에 정착하므로 태풍이 불어 퇴적물이 쌓이면 키조개 밭은 금방 황폐화하고 만다.

보령 근해의 오천항, 장흥의 득량만이 제일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키조개는 주로 패주(관자)를 식용한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정혈작용이 있어 임산부의 산후조리나 피부미용 그리고 혹사당한 간장을 보호하는데 최고다. 술안주나 탕국으로 들면 그 맛이 다른 조개 맛보다 달보드레하고 웅숭깊다. 청정해역의 100% 자연산이므로 잠수부를 동원해 채취해야 한다.

패주는 일본에 전량 수출하였으나 최근에는 서울에서도 키조개 탕집이 늘고 있다. 인사동 입구 낙원상가 근처 계동초등학교 골목에 있는 송학식당(김순애, 02-765-5335)은 짱뚱어탕과 함께 키조개탕으로 여름 입맛을 한껏 돋운다. 키조개를 이용한 음식으로는 우선 패주를 얇게 나박나박 썰어 문어와 함께 술안주로 내는데 그 맛이 부드럽고 순후하다. 키조개 살을 넣어 쌀가루로 끓인 국물은 조개탕으로서는 별미에 든다. 짱뚱어탕이 특유한 스태미너 음식이라면 키조개탕은 속앓이를 부드럽게 푸는 입맛으로 즐길 수 있다. 대개 한번 먹어본 미식가들이 패주 구이와 탕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달착지근하게 혀를 자극하며 감칠맛 나게 엉기는 것도 그렇거니와 밀가루와 달리 키조개 살이 쌀가루 국물과 합을 이루는 것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래서 키조개는 조개 중에서도 일품계에 드는 반가의 음식이었고, 전복이며 백합과 함께 짝을 이루는 어패류에 들었다. 산지에서도 1kg당 1만 원을 호가하니 꽤 비싼 편이지만 누구나 먹고 나면 뒷맛이 개운한 것이 여름뿐 아니라 9월을 제외하고는 한결 그 맛이다. 7, 8월은 금어기로 키조개의 성장을 위해 채취를 금하고 있으나 오천항의 경우 연중 무휴의 냉동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오후 4~5시쯤이면 포구엔 활기가 넘친다. 새벽 일찍 조업에 나섰던 30여 척의 채취선이 키조개를 부두에 쏟아 놓으면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눈(키조개 관자)과 꼭지 날강지만 고르고 주홍빛 내장을 걸러내는 손놀림이 바빠진다. 특히 패주라 하는 키조개의 조개관자는 횟감으로도 일품이고 쇠고기(등심)와 합을 이룸으로써 불판구이와 즉석회를 즐기기 위한 조갯집들이 항상 성황을 이루는 곳이 또한 오천항이다.

해마다 봄철에서 여름철로 넘어올 때면 식인 상어가 돌출하여 잠수부들을 괴롭히는 것도 이 무렵이다. 홍합이 동해(東海) 부인이라면 키조개 또한 서해(西海) 부인으로 미인 반열에 들 수 있어 맛과 미인은 동체라 볼 수 있는데 마가 끼는 법 또한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오천항에는 조선 중종 5년 서해안 방어기지의 하나로 축성된 성곽이 있고, 이 성(城) 밖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 때는 500여 명의 신도가 순교한 갈매못 성지가 있고, 또 삼국설화 중 도미(都彌) 부인의 정렬사당이 있는 곳이다.

송학식당에서 키조개는 최근에 개발한 음식이지만 송학별주(동동주)와 함께 곁들이는 짱뚱어는 오래 전부터 단골손님으로 바글거린다. 구수하면서도 비리지 않은 여름 보강식품이기 때문이다. 서해의 물 속에 잠자는 미인 키조개보다는 못 생긴 물고기지만 그 맛은 각별하기 때문이다. 키조개탕과 짱뚱어, 서울 사람들에게는 낯설지만 남도 사람들에게는 여름 스태미너 음식으로 각광 받아 온 음식이다(키조개탕 2인분 1만5000원, 짱뚱어탕 2인분 1만 원).

◇ Tip

도미(都彌) 부인

백제 개루왕 때의 평민 도미의 부인. 이름이 아랑이라고 전한다. 가난하지만 미인인데다 절개가 굳은 것으로 유명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개루왕이 절개를 시험하기 위해 도미를 잡아들인 다음 도미와 내기 하여 이겨 그대를 차지하게 되었다며 여러 번 동침을 요구했으나 절개를 지켰다. 하늘에서 내려보낸 조각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가니 개루왕이 벌로 눈을 멀게 한 남편이 살아 있어 같이 고구려 땅에 가서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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