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장 부지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아 온 필자는 유치반대 운동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의 안전성 문제 자체보다는 근본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반핵단체는 처분장 안전 실패 사례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과는 전혀 무관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에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발생한 누출사고의 예를 들곤 한다. 그리고 플루토늄의 치명적인 독성에 대해서 홍보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재처리 후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없다. 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속에는 플루토늄이 없다.
반핵단체는 원전건설 정책이 지속되는 한 처분장 반대운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은 원자력의 아킬레스건인 처분장 건설을 막음으로써 원전 건설 자체를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가 국내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상당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원전 1기당 연간 200드럼(1드럼은 200ℓ) 미만 발생하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고려할 때 빠르면 2008년 원전부지 내 저장용량은 한계에 도달한다. 그렇지만 2005년 상용화를 목표로 진행 중인 유리고화체 기술이 보급되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연간 발생량이 현재의 약 20% 수준으로 줄어들게 돼 저장용량 한계 시한은 상당기간 연장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유리고화체 기술은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는 시간을 버는 데는 도움이 될지언정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더욱이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원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 산업체, 연구소 등에서도 발생하는 데 현재 4000드럼 이상 저장돼 있고 매년 발생량이 크게 늘고 있다. 처분장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취급 부주의에 따른 만약의 방사능사고 가능성을 떠안은 채 보관되고 있는 것이다.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원 개발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내세우는 반핵단체의 주장은 환경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핵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 건설 정책에 대한 반대의 수단으로서 처분장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대다수 국민에게는 합리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에 수반되는 방사성폐기물은 원전에서 전기 혜택을 받고 있는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할 국가적 사안인 만큼 처분장 문제에 대한 반핵단체의 융통성을 기대한다.
강정민(핵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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