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른에서 만난 스위스은행협회 필립 로스 최고경영자(CEO)에게 스위스 은행산업의 경쟁력 비결을 물었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이라고 단언했다.
취리히에서 만난 우르스 루스텐버거 한국스위스상공회의소 회장(변호사 겸 컨설턴트)의 견해도 같았다. “스위스 경제의 가장 큰 강점은 안정”이라는 대답이었다. 스위스 경제성장률이 2%대에 그치는 이유를 묻자 “2% 이상 성장하면 물가상승 등 부작용이 훨씬 많아 아무도 원치 않기 때문”이라며 안정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시장을 존중하는 ‘작은 정부’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전문가 중에는 한국의 외환위기가 잠재적 능력 이상으로 무리하게 성장을 추진했기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성장’에 대한 집착이 화를 불렀다는 뜻이다.
현 정권의 ‘개혁’과 ‘강한 정부’에 대한 강박관념도 따지고 보면 과거 정권이 ‘고성장’에 관해 갖고 있던 집착 또는 편집증을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금융 재벌 교육 의료 등의 개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또다시 언론개혁이라며 칼을 빼든 모습이 그렇다.
루스텐버거 회장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시장에 마구 개입하는 ‘강한 정부’를 꼽았다. “한국 경제가 유리집이라면 한국 정부는 코끼리다. 코끼리가, 비록 선의(善意)일지라도 많이 움직일수록 집은 부서진다.”
경제가 유리집이라면, 정권과 본질적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언론은 민감한 재료로 지어진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조금 구멍이 났더라도 ‘내가 수리해 주마’라는 코끼리의 제의를 거절하고 싶은 이유다.
천광암<경제부>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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