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는 주인공 좀머씨의 외침은 급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생을 죽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던 좀머씨. 그는 결국엔 허겁지겁 호수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 최후를 맞는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쥐스킨트 특유의 서정적 문체에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간결하고 세련된 터치의 삽화가 ‘숨은 공신’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반추상화와 만화를 섞어놓은 듯한 삽화는 분명 소설의 감동을 배가시키는데 큰 몫을 했다.
오늘 소개하는 스위스의 다국적 금융회사 크레디트 스위스의 기업광고에는 ‘좀머씨 이야기’의 삽화를 담당한 장자끄 상뻬의 그림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마치 한편의 동화를 연상케하는 그의 그림은 당연히 ‘좀머씨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좀머씨 이야기’를 읽었던 사람이 이 광고를 보면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소비자를 광고에 몰입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광고는 대중적 인기로 이미 호의적 정서를 얻고 있는 오브제(불어로 ‘물체’라는 뜻, 기성품 또는 그 부분품으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 기법을 말하기도 함)를 사용함으로써 베스트셀러 책의 이미지를 덤으로 업고가는 효과를 누린다. 즉, 책의 마케팅에 들어간 비용을 ‘공짜’로 이용하는 것.
삽화가인 상뻬는 현재 미국의 유명 시사잡지 ‘포브스’의 표지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약중이다. 따라서 주고객인 상류층의 호감을 형성하기에 유리하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금융업의 경우 이런 선택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용하게 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카피가 절제된 배경그림은 ‘Whatever makes you happy(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뭐든지 합니다)’란 짤막한 슬로건과 이어져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심정을 자극한다. 줄을 선 사람들이 인사인해를 이룬 극장에서 누군가 당신을 위해 ‘VIP용 출입구’를 열어준다면…. 금융업의 최대 이슈인 ‘서비스’는 유연한 일러스트를 통해 잔잔한 감동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손정환(다이아몬드베이츠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