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학비평 '타락'에 순수문학 '추락'

  • 입력 2001년 7월 2일 19시 05분


비평(批評)은 ‘사물의 미추(美醜)와 장단(長短)을 들추어내 그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최근의 문학비평은 과연 제대로 문학작품의 미덕을 칭찬하고 흠결을 비판하고 있는가.

우리 문학 비평계가 순수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학비평이 엄정한 판단력을 상실하고 문학권력과 출판자본에 종속됐으며, 이런 비평의 ‘타락’이 순수문학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문학비평계의 독립군’으로 불리는 평론가 김명인씨는 ‘출판저널’ 최근호에서 “비평이 문학상품 포장을 위한 장식행위로 전락하고, 이에 따라 비평과 글을 팔고사는 매문(賣文)의 경계가 사라졌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1980년대 비평이 ‘운동권력’이었다면 1990년대 비평은 ‘상품권력’이다. ‘상품권력’은 문학을 살리는 권력이 아니라 문학을 고갈시키는 권력이다. (…) 우리 비평의 상업주의적 문화권력화가 종식되지 않고는 비평의 위기, 나아가 문학의 위기는 문학의 종말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김명인)

출판전문지 ‘송인소식’ 최근호에 실린 출판인 좌담에서도 소위 ‘주례사 비평’으로 요약되는 문학평론에 대해 우려가 제기됐다.

이 좌담에서 이권우 전 ‘출판저널’ 편집장은 “최근 문학비평이 제대로 비판해야 할 점을 비판하지 못하고 정확하게 작품의 장단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광고문구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문학비평이라면 어느 독자가 그 비평가의 말을 믿고 책을 사겠는가” 반문했다.

반면 김이구 창작과비평사 편집국장은 “비평가의 임무 중에는 책의 장점을 알려 독자와 작품이 만나는 역할도 있다”고 전제하고 “평론가의 작품 해설이 홍보나 광고에 활용되는 빈도가 많아져 어쩔 수 없이 비평가들이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비평시스템이 붕괴한 근본적인 원인을 몇몇 출판사가 순문학 분야에서 스타시스템을 도입한 마케팅 전략에서 찾았다.

“90년대 들어서 몇몇 특정 출판사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했고, 소위 ‘미모 마케팅’을 너무 많이 했다.(…) 과다한 선인세 등 물량 공세로 소설가를 가수 키우듯이 스타로 만들고 있다.”(한기호)

이같은 비평의 상업화가 갖는 문제는 그 자체의 변질에 그치지 않고 본격문학의 위기를 조장 내지 방조한다는 점이다. 최근 대중문학이 본격문학의 본령을 차지한 것처럼 떠벌리면서 마치 대중문학 작가가 노벨문학상이라도 받을 것 같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문학비평계가 이런 혼란을 평정할 방도는 무엇인가. 좌담 참석자들은 “비평계가 상품성이 없더라도 문학적 역량이 풍부한 작가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명인씨는 비평계의 윤리의식 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이런 일은 불가능할까. 권력화된 문학동아리 집단에 어설프게 한 다리 걸치지 않고, 비대한 문학출판사들로부터 주어지는 몇 푼의 돈과 명예를 좇지 않고, 비평가로서의 순수한 정체성에 귀의하는 일은, 그리하여 동시대 문학과 세계와 사람들 앞에 정직하게 홀로서는 일은. 혹시 그 일은 지금 바로 무를 자르듯 결단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은 아닐까.”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