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먹을 것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도시락’이란 말을 듣자마자 약간 떡이 된 밥과 각종 반찬 냄새, 친구들의 수다가 떠오르며 군침이 돌더라구요. 그리고 생각난 것이 ‘코끼리 밥통’! 보온 도시락계를 평정했던 코끼리 밥통, 요즘도 그렇게 난리일까요? 좀 무거운 ‘코끼리 밥통’을 낑낑거리며 들러메고 밥 먹으러 가는 건지, 공부하러 가는 건지 터벅터벅 학교에 가던 길이 생각납니다.
학창시절 유행하던 ‘코끼리 밥통’은 보통 도시락통보단 크고 무거웠지요. 하지만 보온 하나는 끝내줘서 아침에 엄마가 싸준 밥이 점심 때 열어도 김이 날 정도였어요. 맨 밑단에 있는 국 그릇에 뜨거운 국을 담아가면 점심 때까지 뜨끈뜨끈…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뜨거운 밥을 먹일 수 있다는 거에 뿅~가서 너도나도 코끼리 밥통을 샀고, 누가 일본에 간다면 ‘코끼리 밥통 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요. 지금 생각하면 일본 가는 사람들, 너무 싫었을 것 같아요. 그 밥통이란 것이 부피가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부탁하신 걸 보면 ‘뜨거운 밥을 먹이겠다’는 엄마들의 자식사랑, 대단하죠?
그런데 무적 코끼리 밥통에도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김치통이였습니다. 일제라서 그랬겠죠? 한국 사람 밥상에 빠질 수 없는 김치지만 잘못 쌌다간 국물이 질질 흘러 스타일을 완전히 망가뜨리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 했는데요. 그것도 미국서 건너왔다는 환상의 밀폐용기(이름도 유명한 ‘탐파통’ 말이예요. 정확환 이름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덕분에 걱정 붙들어매게 됐죠. 김치국물은 물론 모든 국물을 깔끔하게 담아올 수 있었으니까요. 이러니, 이따만한 코끼리 밥통에 김치통, 알루미늄 호일에 싼 김과 나박나박 썰어놓은 디저트 과일통은 따로…학교에 밥 먹으러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은 소박한 계란말이였습니다. 계란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도시락통에 얌전히 담긴 계란말이만은 참 맛있었어요, 당근이랑 파를 송송 썰어넣은 계란말이, 김을 넣어 까만 줄무늬가 생긴 계란말이, 치즈를 넣은 신식 계란말이 등등. 짜고 매운 밑반찬 위주의 도시락 반찬들 속에서 부드러운 맛이 더 돋보였던 거 같아요. 엄마가 아침에 반찬이 없다며 후다닥 말아주신 계란말이는 점심 때 쯤이면 적당히 식어 더 맛있었죠…
매일 맛있는 점심을 찾아 헤매는 이 정성으로 도시락을 쌌다면 벌써 수십통은 쌌을텐데, 아직은 도시락을 준비할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반찬도 없고, 매일 아침 밥을 하기도 싫고, 또 도시락을 들고 출퇴근하기도 귀찮고…아마 도시락이란 나보다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싸야 더 신나고 맛있는 건가 봅니다.
***계란말이 후다닥 만드는 법***
재 료 : 계란 2개, 치즈 3장, 당근, 파 조금씩
만들기 : 1. 계란을 완전히 풀어 섞는다
2. 당근과 파를 깨끗이 씻어 곱게 다진다
3. 풀어놓은 계란에 곱게 다진 당근과 파를 잘 섞는다
4.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계란을 붓고 약간 덜 익은 상태에서 치즈를 살짝 얹는다
5. 치즈가 조금 녹으면 앞쪽부터 계란을 만다.
6. 적당히 식혀서 자른다
ps. 후배의 엄마는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시락통을 다 갖다 버리셨대요. 으~얼마나 지겨우셨으면…아이 두어명 키우다보면 십몇년을 도시락 반찬과 씨름을 했을 테니 그 맘 이해도 갑니다. 요즘은 급식을 하는 학교들이 많은 모양이더라구요.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르겠죠? “오늘은 무슨 반찬일까?”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고 감탄도 하고 실망도 하던 점심시간의 짜릿한 한순간을요. 편하다는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