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한 온라인잡지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곳 IT 벤처갑부들의 집안을 훔쳐봤다. 폭포같은 샤워시설이나, 전기가 통하면 투명해지는 벽 등, 상상을 초월하는 시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서라운드 오디오와 대형 평면스크린을 갖춘 홈극장 시설. 이 시스템에는 다채널 DVD/CD는 물론, 인터넷과 고속LAN, 그리고 전화 및 팩스 등 통신기기가 통합되어 있다. 20대 초반에 엑사이트를 창업한 그래험 스펜서와 조 크라우스는 이를 이용해 친구들과 온라인 네트워크 게임을 즐긴다.
둘째는 첨단 보안 및 홈오토메이션 시스템. 보안경보기능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집안 곳곳을 살펴 볼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원격으로 조명 및 커튼, 포도주창고의 온도, 그리고 정원의 분수 등을 조절하는 것은 기본. 심지어 집안의 향내를 오렌지향, 야생장미향, 소나무향 등으로 원격조정하는 기능을 갖춘 집도 있었다.
셋째는 자연스러운 연출기술. 자연과 조화된 중세풍 저택의 문을 열고 실내에 들어서면 안보이던 멋진 정원이 나타난다. 앞뜰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의 생음악 연주가 실내에서도 생생하게 들린다.
집안의 어디에서도 첨단의 홈네트워킹 시설은 보이지 않고 시스템 조작을 위한 패널은 선반이나 탁자밑에 감추어져 있다. 분위기에 맞추어 어느 순간 디지털피아노의 건반이 스스로 춤을 추며 리스트의 광시곡을 연주하도록 한 것은 고도의 연출기술이다.
이러한 최첨단 시설은 아직까지 수억원대에 이르는 고가 시스템이다. 그러나 반가운 것은 2001년에 들어서면서 보급형 디지털홈 장치들이 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탁상형 셋톱박스, 블루투스 무선허브, 디지털 웹TV, 무선키보드 등을 결합한 통합가전기기와 디지털홈 플랫폼이 바로 그들이다.
시장은 이들이 장차 차세대 인터넷과 결합해 새로운 거대소비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잠재시장을 겨냥해서, 이미 하먼카돈, 노키아, 인터넷TV, 프린스턴그래픽시스템, AOL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우리가 꿈꿔온 디지털홈의 모습이 현재의 예상처럼 전개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새로운 국면전환이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그것이 e밸리의 다소 침체된 분위기를 얼마나 빨리 상승국면으로 전환시킬지 두고볼 일이다.
장석권(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changsg@stanford.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