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거사범 벌금 20만원의 차이?

  • 입력 2001년 7월 3일 18시 39분


선거사범 엄단은 이번에도 역시 엄포로 끝나고 마는가. 법원은 3일 4·13총선 당시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현역의원 등 8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에 비해 전반적으로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1심에선 8명 가운데 5명이 의원직을 상실할 형량이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2건에 대해서만 ‘의원직 상실’ 판결을 내리고 3명은 ‘구제’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다짐했던 선거사범 엄단 방침과 상당한 거리를 느끼게 한다. 당시 법원은 선거사범 신속 재판은 물론 유죄가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당선무효선인 벌금 100만원이 선고된 3명의 현역의원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항소심에서 벌금 액수가 20만원 줄어드는 바람에 의원직 상실 위기에서 벗어났다.

물론 양형(量刑)은 법관의 고유권한이다. 재판부의 입장에선 검찰의 수사가 미진해 기소된 혐의만으로는 무거운 처벌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1심과 2심 재판부의 벌금 20만원 차이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현역의원에 대한 이같은 온정적 판결이 내년 지방선거 등에서의 불법 탈법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사실 국회의원에게 벌금 80만원은 하나마나한 처벌이다. 아무런 징벌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선거사범 재판은 기본적으로 의원자격을 따지는 절차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선거부정이 인정되면 그 정도에 상관없이 엄벌해야만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선거풍토를 바로잡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후보 본인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다분히 정치인을 위한 선거법 규정도 유죄만 인정되면 당선을 무효화하는 방향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당초 법원의 다짐과는 달리 선거사범 재판이 한없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4·13총선을 치른지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현역의원의 당락이 걸린 선거법 위반사건(74건) 가운데 27건(36%)은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다. 2심 선고까지 끝난 사건은 21건에 불과하다. 법원은 선거사범 재판에서도 법이 살아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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