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치는 수익자 부담의 보험방식에서 국가관리 의료체제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의료의 수요와 비용조달을 사실상 국가관리 하에 두는 조치이기 때문에 공급자인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통제 또한 강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직장의보와 지역의보의 통합은 보험료 부담의 형평이 보장되지 않으면 ‘위헌’이라면서도 묘한 논리로 위헌이 아니라고 합리화했다. 즉 직장과 지역의보 재정이 완전 통합되는 2001년 12월 31일까지 자영자의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1년 6개월의 기간이 남아 있고, 보험공단에 보험가입자의 대의기관이며 의결기관인 재정운영위원회를 두어 합리적으로 보험료를 부과해 부담의 형평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새 법안은 재정운영위원회까지 폐지토록 했으니 이제 국민건강보험법이 위헌임은 말할 것도 없다. 비용부담자인 보험가입자가 참여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뤄 나가야 하는 사회보험제도의 이념에도 더 이상 맞지 않다.
또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의료보험 진료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기금의 설치 목적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증진법 자체를 일탈한 것이다. 이 법은 국민에게 건강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고 건강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담배에 부담금을 부과해 건강증진기금을 조성토록 했다. 그런데 저소득자나 고소득자가 똑같이 부담하는 담배부담금을 인상해 의료보험 진료비용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사회보험의 소득재분배 원칙에 배치된다.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만 보험진료 비용의 50%를 국가가 부담하는 것도 형평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제조회사에 근무하는 월 보수 150만원인 기능직원의 보험진료비에 대해서는 국가 지원이 없고, 대형 편의점을 운영하여 월 소득 900만원인 자영자의 보험진료비는 국가가 50%를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예산 범위 내에서 보험공단의 건강보험사업 운영비용의 일부를 부담할 수 있게 한 법규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수익자 부담의 보험 방식을 버리고 국가관리체제로 가겠다면 그에 부합되는 조세제도와 의료사회화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분쟁과 분열은 분배과정에서 형평성과 정당성을 상실할 때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 종 대(한국복지문제연구소장,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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