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홍무제의 무신들

  • 입력 2001년 7월 5일 18시 35분


중국의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주원장(朱元璋)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피해망상증이 많았다고 한다. 주원장은 젊을 때 거지 중 노릇을 한 적도 있고 떠돌아다니며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승려를 비하하는 말이나 유적(流賊)의 ‘적’이라는 글자 등을 사용한 문인들은 자신의 과거를 비웃는 것이라며 가차없이 처벌했다. 하물며 도(道)와 도(盜)는 발음이 같다해서 도(道)를 문장에 넣은 사람까지 주살했다고 하니 글 쓰는 사람들은 단어 하나 하나 선택하는 데도 그야말로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조정의 대신이나 각 지방의 관리들은 공문이나 축하문을 만드는 데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의 하사품에 대한 감사문을 올리는 데도 혹시나 황제가 트집잡을 만한 글자가 들어 있지는 않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엉뚱한 ‘글자 해석사’까지 생겼다고 한다. 신하들이 이처럼 전전긍긍하자 홍무제는 스스로 모범 문례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그에 따르도록 했다. 후세 사가들은 많은 문인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이 같은 사건을 ‘문자의 옥(獄)’이라고 불렀다.

▷홍무제는 당초 ‘천하가 문란하면 무(武)를 사용하고 천하가 태평하면 문(文)을 사용한다’고 할 정도로 문인들을 존중했다. 홍무제가 문신(文臣)들을 가혹하게 다룬 것은 무신(武臣)들의 간교한 부추김 때문이었다. 건국에 실질적인 공을 세운 무신들이 문신들은 기회만 있으면 ‘무식한’ 황제를 몰래 비방한다며 끊임없이 고자질을 했다고 한다. 명나라의 등장으로 몽골족의 무단 통치에서 벗어났다고 좋아하던 한족(漢族)은 다시 암울한 철권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직언과 진실을 얘기한 문인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례는 역사상 무수히 많았다. 그 사례들의 배경에는 항상 중상모략을 하며 통치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주구세력들이 있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어제만 하더라도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두고 입에 담기 거북한 말까지 동원하며 격론을 벌였다. 그 중에는 ‘홍무제의 무신’ 역할을 하는 듯한 인사도 언뜻 눈에 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머지않아 판명날 것이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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