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공정위 공신력의 위기

  • 입력 2001년 7월 5일 18시 35분


“도대체 ‘위’에서는 뭘 원하는 거 같습니까.”

최근 만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불쑥 털어놓은 얘기다. 최근 삼성SDS가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보에게 저가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준 데 대한 공정위의 공정거래법 적용이 무리라는 서울고법의 판결, 언론사 조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조사 배경에 관한 의혹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끝이었다. 얘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행간(行間)’에서 그의 답답함을 읽을 수 있었다.

공정위가 언론으로부터 집중 비판을 받는 것은 81년 출범이래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정위의 한 중간간부는 “그동안 언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힘없는’ 공정위가 막강한 재벌들을 상대로 일을 해올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지난 세월 언론은 재벌과의 싸움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공정위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징계’하면서 언론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힘과 영역을 늘려왔다.

그런데 최근 공정위가 드러내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들 때문에 언론이 그동안 공정위를 지나치게 신뢰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약사 외 약국개설 허용검토’ 같은 민감한 내용의 문건을 아무 검토없이 홈페이지에 올리거나 ‘오래 된 선배 관료는 용퇴하라’고 조직질서를 흔드는 문건을 공정위 사이트에 띄운 데서 ‘나사 풀린’ 공정위의 현주소를 본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언론이 그동안 너무 공정위 말만 믿었던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이제 언론도 공정위에 ‘억울하게’ 당해보니 기업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실추된 공신력을 회복하는 길은 가까운 곳에 있다. ‘폐쇄경제’ 상황에서 경쟁이 이뤄지던 시절의 골목대장 역할에서 벗어나 국제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가는 ‘심판관’이 돼야 한다. ‘정치적 외풍’의 의혹을 받을 일들은 벌이지 않고 볼 일이다.

박중현<경제부>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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