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한국인 게놈지도 초안 작성 서정선 교수

  • 입력 2001년 7월 5일 18시 35분


《서울 광화문 한복판의 세안빌딩엔 ‘한국인 지놈(Genome·게놈)시대 개막’이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플래카드의 주인은 이 빌딩에 입주해있는 생명공학 벤처회사 ㈜마크로젠. 서정선(徐廷瑄·49)서울대의대교수가 세운 이 회사가 지난달 26일 한국인의 유전정보를 담은 게놈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26일 국제 공동연구팀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셀레라 지노믹스가 인간 게놈지도 초안을 발표, ‘신의 대륙’에 착륙했다고 세계를 뒤흔든지 꼭 1년만이다. 인터뷰는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만든 서정선이라는 인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여기서 게놈지도 자체를 설명하는 것은 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발표 이후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약간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회사 주가가 오르고(실제로는 주가가 조금 내렸다. 소문에 오르고 발표에 빠진다는 것이 증권가의 관행이라던가), 축하전화 받느라 바빴을 것이라 여겼던 기자에게는 뜻밖이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알아듣게끔 설명하는 일이었다.”

열정과 한숨과 약간의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서교수는 말했다. ‘제4의 물결’로 일컬어지는 바이오 테크놀러지(생명공학) 혁명이 시작됐건만 몇몇 앞서가는 이들만 이를 감지할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전자나 DNA정도만 말을 꺼내도 절레절레 고개를 젓기 시작한다.

“이번에 우리가 해낸 일을 정확히 말하면 ‘박테리아 인조염색체(BAC) 클론지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국인 유전자의 물리적 지도와 염기서열지도의 중간쯤 되는 것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역시 기자의 이해한계치를 넘는 설명이었다. 중간치 정도라면 ‘한건 주의’가 아닌 이상 굳이 발표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항간의 ‘비평’을 의식했는지 “딱 한마디로 얘기하겠다”고 했다.

“200페이지짜리 책 500만권 분량을 저장한 자료가 나온 거다. 한국인 게놈을 10만개의 조각으로 잘라 붙여왔다고 하면 이건 엄청난 일이다.”

서대표는 이번 초안을 바탕으로 2년 안에 한국인이 잘 걸리는 암과 고혈압 당뇨 등 7대 질병 유전자를 분석해 이를 진단치료할 수 있는 ‘맞춤 의약’ 시대를 열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전자로 보아 당신은 2년 후에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약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환자에게 말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마크로젠이 지향하는 것도 이같은 일을 하는 유전자 종합서비스회사다.

그는 또 황색인종 유전자 연구로 확장한 ‘몽골리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5년후 쯤이면 15억인구의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연구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에게 바이오혁명을 이해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과거엔 의사들이 경험과 판단력을 통해 약간은 권위적으로 진단을 했다. 이제는 유전자정보를 통해 진단해야 한다. 이같은 의학혁명을 일으키는 바이오혁명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했던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 정보혁명과 다르다. 모든 혁명은 성숙기가 필요한 법이지만 바이오혁명은 이게 필요없다. 정보가 나오자마자 바로 혁명은 시작된다. 바이오혁명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스피드와 대용량 컴퓨터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처음에는 바이오 혁명에 대해 장난 비슷하게, 예언하듯 말해왔다. 그런데 이를 알아보는 한국인이 너무나 적었다.

세상엔 가도 되고 안가도 되는 길이 있지만 꼭 가야만 하는 길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해보겠다고 작정하고 회사를 차린 것이 97년.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이 완성됐을 때 이제 마크로젠 목표의 절반은 성취됐다는 감격에 그는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길을 간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었다.

생명연장 문제와 직결된 바이오테크가 자칫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없지 않다. 생명윤리를 강조해온 서교수는 종교가 있는지 궁금했다. “도학에 관심있는 무교”라는 대답. 21세기를 이끌 첨단산업 바이오테크에 비하면, 도학은 수염 허연 신선의 모습이 연상되는 과거의 이미지다. 한국 바이오테크의 선두주자가 하루 20분씩 명상을 한다?

계기는 있었다. 10년전 미국 록펠러대학 분자종양학실 객원연구원으로 실험을 하다 따발총처럼 쏟아지는 방사선에 양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굉장히 튼튼했던 몸이 아파왔다. 뭔가를 해야겠다 싶어 태극권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몸에 꿈틀거리는 기운이 느껴지면서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원래 한방에 관심이 많았다. 외할아버지가 궁중 전의를 지낸 한의사다. 부모님이 서양의학을 했던 내게는 한방과 양방의 피가 둘다 흐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동서양 의학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의 몸을 더 잘알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생명은 물질과 영혼이 공명하는 것. 사람의 몸(물질)이 무엇으로 구성이 됐는지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2010년이면 몸에 관한 모든 것이 규명되리라고 서교수는 내다본다. 그가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도 이를 빨리 알아야만 다음단계인 영혼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으로 구성된 곳이 세상이다. 과학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바꿔준다. 그러나 어떤 영역을 넘어서면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럴 때 서교수는 도를 떠올린다.

골치아픈 일이 있을 때는 주역책을 펼쳐놓고 점도 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맺힌 원(怨)을 풀고 자유로운 영혼을 갖는 것이 살아있는 신선이 되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동서양 의학이 통합돼 몸을 알게 되고, 그 다음 영혼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 2025년 경이면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게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되면? “거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아니면 개벽이고”하며 서교수는 하하 웃었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그를 두고 한 미국인친구는 ‘르네상스 맨’이라고 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최인훈 ‘광장’의 서문)

서교수는 ‘광장’의 이 대목을 좋아한다. 바이오테크가 정말 혁명이냐. 이것이 사람의 수명을 늘여준다는데 정말이냐. 그걸 알고 싶어 운명을 만나러 간다는 각오로 광장을 찾았다.성공으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관심밖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에게는 오기가 있다. 남들은 안된다고 그냥 돌아설 때 그는 다시 한번 찔러보고 “이봐. 되잖아!”하고 외쳤다. 당뇨병(93년) 림프종(93년) 선천성 면역결핍증(94년) 유발 생쥐 세계최초 개발 등 ‘세계 최초’란 수식어도 여기서 비롯됐다.

그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다. 84년 미국서 차린 대학 실험실 벤처. ‘나도 똑똑한 사람이다. 시작하면 틀림없이 돈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운 회사였다. 그런데 89년 경쟁업체가 예정보다 반년이나 빨리 신제품을 내놓는 바람에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인정하면서 깨달은 것이 두가지였다. 하나는 바이오혁명 속에서 2등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 또하나는 돈벌겠다는 생각으로 벤처를 했다가는 망한다는 것.

사장이 되고서 인생에 대해 엄청나게 눈을 떴다고 생각한다. “교수는 늘 ‘갑’이다. 그런데 사장이 되고보니까 ‘을’이더라. 사업이라는 것은 박찬호 야구와 같다. 혼자 잘던진다고 되는게 아니고 선수들이 받쳐줘야 한다. 인간세상은 전부 네트워크로 엮여져 있지 않나.”

네트워크라는 말이 나왔길래 “왜 당신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서교수에게는 바이오테크의 선두주자라는 찬사 못지않게 ‘사기꾼같다’는 비난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는 선선히 말했다.

“혼탁한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사람들은 그걸 못참는다. 사실 나는 세련된 사람은 아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선 해결하는게 중요하니까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빚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의대출신이어서 벤처업계에 ‘그룹’이 없다. 전에는 그 때문에 괴로웠다.”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가. 망태기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다가 필요한 것들만 담느라고 담았는데, 나중에 보니 정작 중요한 건 빠져있는 건 않은지 번민한다고 서교수는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목표 중 하나가 사회의 어떤 ‘주의(主義)’로부터 독립이다. 대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것이 50의 나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한지 물었다. 달변인 그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행복하려고 사는 건 아니다. 부친(고 서병설 서울대의대교수)에게 잘못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려고 사는 것 아닌가.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고, 교수라는 한계를 넘어 일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서정선교수는…▼

△1952년 서울출생

△1970년 경기고 졸업

△1976년 서울대의대 졸업

△1980년 서울대의대 박사학위(생화학)

△1983년-현재 서울대의대 교수

△1997년 ㈜마크로젠 창업

△서울대의학연구원 유전자이식연구소장, 한 국유전체학회 부회장, 한국바이오벤처협회 부회장 등.

▼(주)마크로젠은…▼

△2000년 T세포 면역결핍모델 생쥐, 당뇨병모 델 생쥐 국내 생물특허 1,2호 취득

산업미생물 자이모모나스 전체게놈염기서열 세계 첫 해독

△2001년 키모세라피(항암치료)정밀분석용 칩 개발

△자산 491억원 자본금 22억4000만원 부채 6억 원(2000년말 현재)

△매출 21억원 영업이익 600만원 경상이익 3억 4000만원(2000년 6월말 현재)

2001년 매출 24억원, 2002년 매출 100억원 예상

△시가총액 1140억원(4일 종가 2만5450원 기 준) 사장 지분 11.6%(132억원 상당)

▼청소년들에게…▼

스피드와 컴퓨터가 바이오테크를 좌우한다고 하지만 역시 바이오테크는 생명을 다루는 과학이다. 서정선교수는 바이오테크를 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을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1.모든 생명은 의미가 있다〓굼벵이에게 삶의 의미는 구르는 것이다. 단 자기자신의 의미는 자신이 찾아내야 한다.

2.사람은 원하는대로 이루어진다〓똑똑한 학생보다는 ‘된다’고 믿고 매달리는 학생이 실험에도 성공한다. 인간에게는 강렬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3.정말 중요한 일은 사소한 일이다〓모임에 가는 길에 누군가 길을 물어왔을 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그 사소한 행위가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다.

4.타인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기심이 병을 만든다는 것은 생쥐 실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 원수를 사랑하면 내가 편해진다.

5.하고싶은 일을 하라〓아무리 나이먹어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싶어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미안하지만 이것만은 남이 도와주기 힘들다.

만난사람=김순덕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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