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에세이]안철수연구소 고객지원 실장 임영선씨

  • 입력 2001년 7월 8일 18시 43분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쯤 일이다. 컴퓨터 관련 기술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던 나는 늘 독자설문지를 꼼꼼하게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설문지 내용을 보면 이달의 좋았던 기사와 보완할 내용, 독자들의 연령별 취향 등을 알게 돼 다음 호를 준비할 때 도움이 된다.

설문 중 ‘만일 당신이 필자라면 어떤 내용의 글을 쓰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그 답변으로 보석 같은 필자를 발굴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입문한 필자 한 분이 안철수연구소 최고경영자(CEO)인 안철수사장이었다.

그의 설문지는 늘 남달랐다. 갱지로 만든 설문지는 볼펜으로 작성하는 게 상식이었는데 만년필로 쓰는 게 특이했고 답변을 빼곡히 채우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매달초 잡지가 나오면 안사장의 설문지가 은근히 기다려졌다. “과연 이번달에 무슨 기사가 좋았고 어느 기사가 나빴다고 할까?”

당시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가 쓰고 싶다고 한 글은 시뮬레이션에 관한 것이었다. 그 주제가 잡지 방향에도 맞고 설문지 주인공을 보고도 싶었다. 그래서 그를 우수 독자로 선정하기로 했다. 서울에 살면 선물을 받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선물이 빈약해도 꼭 올거야!”

마침내 안사장이 잡지사에 왔다. 그때도 지금처럼 동자승 같은 웃음으로 수줍은 듯 문을 열었다. 그 후 그가 쓰고 싶다는 시뮬레이션 원고도 실렸고 몇 달 뒤에는 바이러스 퇴치프로그램인 V3도 탄생돼 잡지를 빛내주었다.

나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고객 게시판을 먼저 검색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불만이 있거나 문제를 풀려고 문을 두드린다. 고객의 불만과 제안 항의 등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새 고객을 확보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고객의 소리를 메모한 내용이 제품 개발이나 서비스 향상을 위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지금도 고객의 진지한 항의편지를 찬찬히 읽고 있다. 13년전 안철수 독자의 설문지를 눈여겨보았던 것처럼.

안철수연구소 임영선 고객지원실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