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

  • 입력 2001년 7월 10일 10시 28분


"당신의 남편은 당신의 영주요, 생명이요, 보호자요, 머리이며, 군주이십니다. 당신을 아끼고, 당신을 먹여살리기 위해 몸을 바쳐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폭풍우가 부는 밤이나 혹한의 낮을 지켜주시니 당신들은 집에서 안심하고 아늑하게 지내잖아요."

◇ 셰익스피어, 그의 남아 있는 기록과 남아 있지 않은 기록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챨스 램 남매가 각색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포함, 독자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을 달리하는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어서,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틋한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정작 셰익스피어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당대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를 말해주는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근대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그가, 자신을 휘감고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알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단서가 될 최초의 기록은 1564년 4월 26일의 세례 기록이다. 영국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소읍 스트래트포트 온 에이븐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는,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가 마을의 읍장을 지낼 정도의 유지였으므로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마을의 문법학교를 다녔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결혼에 관한 것. 1582년 11월 27일 당시 18세였던 셰익스피어는 자신보다 8년 연상이었던 앤 헤서웨이와의 결혼허가서를 발부받았는데, 세 번의 결혼예고 후에야 결혼이 이루어지던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급하게 허가서를 발부받았다는 사실과 신부와 신랑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며 이들 부부의 첫딸 수잔나가 결혼 후 6개월 만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활동한 십수년 간 두 사람이 떨어져 살았다는 사실 등등, 그의 결혼 생활은 후대인들의 온갖 상상의 근원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2년 후 햄넷과 주디스라는 쌍둥이 남매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배우 겸 극작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1592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극장의 시인, 셰익스피어

1592년 9월, 극작가였던 로버트 그린이 사망한 직후, 그가 임종 침상에서 탈고한 자서전격의 유작이 출판되었다. 그 팜플렛에서 그린은 셰익스피어를 '벼락출세한 까마귀'에 비유하면서, 대학교육도 받지 못한 풋내기 배우요 극작가인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연극계를 뒤흔드는 것에 심한 질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글은 1592년에 이미 셰익스피어가 배우로서, 극작가로서 확고부동한 자리에 올랐음을 증명해준다.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서 확실한 성공을 거둔 후에도 배우활동을 계속했는데, 1608년 기록에도 여전히 출연배우 명단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1594년 챔벌린 극단에 입단한 그는 일 년에도 여러 편씩, 놀라운 언어구사력과 탄탄한 플롯을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생동감 넘치는 인물이 등장하는 극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서의 명성과 부와 인기를 한몸에 누리게 된다. 1589년 《헨리6세》를 시작으로 1611년 《태풍》에 이르기까지 그는 총 37편의 극을 남겼다. 1613년 플렛처와 공동 집필한 《나의 두 귀족 친척》을 끝으로, 그는 극작가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고향인 스트래트포드로 돌아가 편안한 말년을 보냈으며, 1616년 4월 23일 생을 마감하였다.

◇ '영원한' 셰익스피어, 격변기의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가 살았고 작품 속에 그려낸 시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으로 근대가 태동하던 대변혁기였다. 그 시대에 두 힘의 충돌과 그 갈등을 축으로 하는 드라마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성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몇백 년을 이어오던 질서가 스러지고 전혀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하층계급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계층이 함께 극장에 드나들며 무대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보고 그 역사의 형성에 참여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근대로 이행하는 역사적 흐름의 필연성을 짚어내고 그 질곡과 모순의 단초들을 예리하게 지적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사후에 동료 배우들과 인쇄업자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을 근거로 출간한 것들이다. 박제된 진리로서가 아니라 '열린' 창작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부분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냥을 마치고 지나는 길에 만취해 잠이 든 땜장이 크리스토퍼 슬라이를 발견한 영주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칙사대접을 하여 영주로 착각하게 만든 다음 그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극을 보여주는데, 그 연극이 바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다. 패두어의 부호 뱁티스터에게는 캐서리나와 비앙카라는 과년한 두 딸이 있어 이들을 나이순으로 결혼시키려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얌전한 비앙카에게는 구혼자가 줄을 서는 반면 말괄량이로 소문난 캐서리나의 경우에는 어떤 남자도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마침 결혼도 하고 돈도 벌 목적으로 패두어에 나타난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캐서리나보다 한술 더 뜨는 말괄량이 작전을 펴서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다음,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온갖 생트집을 잡는 등 말괄량이 캐서리나의 기를 꺾어 철저하게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이고자 한다. 마침내 비앙카와 루첸티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가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일행은 가장 순종하는 아내에게 돈을 거는 내기에서 멋드러지게 기적을 연출하여 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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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서경희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나타난 탈가부장제적 결혼의 이상과 여성의 역할>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영어전공) 교수이며, 영미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새로 읽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최근의 셰익스피어 국외 연구동향》, 《셰익스피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이 있다.

◇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 - mail : khsuh@hosim.kwangju.ac.kr

<제공 : 북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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