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두 얼굴의 일본

  • 입력 2001년 7월 10일 18시 36분


일본 정부는 두 개의 잣대를 가졌는지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 수정요구와 최근 오키나와(沖繩)에서 발생한 미군의 일본 여성 성폭행사건을 다루는 태도가 분명히 다르다.

성폭행사건이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분노했고 일본 정부는 기소 전에 용의자인 미군의 신병을 일본측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그 근거로 미일 주둔군지위협정의 부속문서 성격인 ‘운영개선’을 들이댔다. 운영개선에는 “미국측은 살인이나 성폭행 등의 흉악범은 기소 전이라도 일본이 신병 인도를 요구할 경우 배려를 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은 문제의 ‘배려’를 ‘의무’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사건 발생 나흘 만에 신병을 넘겨주자 너무 늦다고 화를 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미일 지위협정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과서 문제를 보자. 한국 국민도 분노하고 있다. 교과서가 학생들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고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근거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의지를 담은 82년의 근린제국 조항, 95년의 무라야마(村山) 총리 담화, 98년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들 문건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도 이 ‘약속’을 ‘의무’로 생각한다. 그래서 일본은 당연히 교과서 재수정에 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교과서 수정 요구는 거부하고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 신병은 넘겨받았다. 미국은 “미 병사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므로 신병을 넘겨줄 수 없다”는 일부 반발을 무릅쓰고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 신병을 넘겨줬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일부 우익세력들의 편을 들어 이웃국가와의 관계가 악화돼도 할 수 없다는 태도다.

일본은 피해자가 될 때와 가해자가 될 때 각각 다른 얼굴을 내미는 야누스라는 말인가.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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