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에서 ‘13전14기’로 생애 처음 우승컵을 차지한 고란 이바니세비치(30·크로아티아)는 다혈질로 유명하다. 판정에 불만이라도 생기면 거세게 항의하고 네트를 걷어차는가 하면 쓰레기통을 집어던지는 등 거친 매너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삼성오픈에서는 이형택(삼성증권)과의 2회전 도중 화가 난 나머지 갖고 나온 라켓 3자루를 모두 부러뜨려 경기를 포기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나는 불같은 모습과 달리 그의 가슴속에는 ‘따뜻함’이 숨어 있다. 이바니세비치는 9일 끝난 윔블던 결승에서 승리한 뒤 눈물을 쏟으며 곧장 관중석으로 달려가 아버지 스리체씨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데도 자기 몸을 돌보기에 앞서 부상으로 오랜 부진에 빠져 있던 아들을 늘 걱정하고 성원해준 데 대한 감사 표시를 한 것. 이바니세비치는 “아버지가 기쁜 나머지 심장에 더 이상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된다”며 “슬럼프에 빠졌을 때 모두 운동을 그만두라고 했지만 아버지만큼은 항상 나를 믿어주고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우승 소감에서 93년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뜬 절친한 친구이자 NBA스타였던 드라간 페트로비치에게 승리를 바친다고 밝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바니세비치는 “당시 윔블던 출전을 앞두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꼭 우승컵을 안겠다고 맹세했는데 이제야 그 약속을 지켰다”고 감격스러워했다.
88년 프로에 뛰어든 이바니세비치는 암에 걸린 여동생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뛰었다. 91년 독립한 고국 크로아티아를 전 세계에 알리려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비롯해 대회에 나설 때 자국기를 가지고 다녔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준결승까지 진출한 크로아티아팀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바니세비치가 평생 꿈이었던 윔블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겉보기와 다른 그의 가족과 국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큰 힘이 되었던 셈이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