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김수정 원작 '둘리', 만화서 나와 무대에 서다

  • 입력 2001년 7월 10일 19시 18분


뮤지컬 ‘명성 황후’을 만든 연출가 윤호진(극단 ‘에이콤’ 대표)이 올 여름 가족뮤지컬을 들고 나왔다. 27일부터 8월19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만화가 김수정 원작의 뮤지컬 ‘둘리’.

‘명성 황후’로 정치권 인사들까지 대거 극장으로 끌여들었던 윤호진에게 웬 만화냐고 반문하는 팬들이 적지 않을 터. 하지만 9일 시연회를 통해 그 베일의 일부가 걷힌 ‘둘리’는 꽤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여름방학 시즌을 겨냥한 신작 뮤지컬 ‘둘리’의 모든 것.

▽가족뮤지컬 맞아?〓가족뮤지컬하면 떠올리는 과장된 캐릭터와 몸짓, 어른들은 갸우뚱할 다소 허무맹랑한 플롯을 ‘둘리’에도 적용시킨다면 오해. 대신 제작진은 만화 속에서 뛰쳐나온 듯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원작의 헤어스타일까지 살리려고 애를 썼다.

둘리의 경우, 배역을 맡은 호주 교포 소년 피터 현의 두상에 석고상을 뜬 후, 다시 그 위에 성형고무의 일종인 ‘폼 라텍스’(Form Latex)를 입혀 마스크를 만들었다. 다른 주인공인 마이콜은 원작 특유의 긴 두상을 살리기 위해 머리 위에 하나의 머리를 더 얹기도 했다. 2000여 만 원을 투자해 마스크를 만들었다는 제작진은 “영화 ‘마스크’의 짐 캐리를 떠올리면 된다”고 했다.

‘둘리’는 극중 다양한 연령대의 캐릭터들을 골고루 조명해 팬들의 연령대를 넓히려 했다. 둘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길동-정자 부부의 신세 한탄이 그런 경우. “나도 한 때 잘 나갔어. 가수가 꿈이었지∼”라는 정자의 넋두리, 아내의 푸념을 받아주는 길동의 한숨은 분명 어른들의 몫이다.

▽오히려 브로드웨이풍〓‘둘리’를 기존 가족뮤지컬과 구분 짓는 것 중 하나는 ‘페임’ ‘렌트’ 등 브로드웨이 풍 뮤지컬에서 선보인 극적 요소가 그대로 사용된다는 점. 브로드웨이의 간판 테크닉인 탭댄스가 장면 곳곳에 나와 극 전체를 리드미컬하게 이끈다.

9일 시연회에서 선보인 대부분의 장면에서도 탭댄스가 사용됐다. 둘리 마이콜 길동 또치 등 주연급이 총출동해 탭댄스 군무를 연출하는 피날레에서는 오히려 만화 원작의 유아적인 감성은 춤사위에 묻힐 정도였다.

무대는 ‘라이언 킹’ 등 애니메이션 원작 뮤지컬일수록 스펙터클한 효과를 추구하는 브로드웨이의 최근 유행을 그대로 따를 계획. 그 중 하나가 풍선 특수효과다. 공기 주입량에 따라 모양을 자유롭게 변형시킬 수 있는 풍선의 특성을 이용해 둘리가 서서히 얼음에 갇히는 장면을 연출했다.

▽결국은 창작 뮤지컬〓‘태풍’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번안 또는 직수입 작품으로 도배됐던 최근 뮤지컬계에 ‘둘리’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페임’에서 흑인학생 타이론 역으로 오히려 주인공인 쏘냐의 인기를 제쳤던 배우 임춘길은 이번에도 독창적인 가무와, 마이클 잭슨을 패러디한 댄스 등으로 대박을 예고했다. 시연회를 지켜 본 한 공연관계자는 “임춘길의 경우 이 작품에서도 계속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내고 있다”며 “그것이 창작 뮤지컬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연출가 윤호진은 “공룡 캐릭터는 세계 모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라며 “세계 무대 진출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화목 오후3시, 수금 오후3시 7시반, 토일 오후3시 6시반(월 공연 없음). 2만∼7만원. 02-780-6400,1588-7890

◆ 둘리역 호주교포소년 피터 현

뮤지컬 ‘페임’에서 무명 시절의 혼혈가수 쏘냐를 전격 캐스팅했던 에이콤 윤호진 대표는 ‘둘리’에서도 비슷한 ‘파격’을 시도했다. 국내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호주 교포 소년 피터 현(16)을 주인공 둘리 역에 캐스팅한 것. 윤호진은 “춤과 노래에 모두 능한 어린 친구를 찾으려 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었다”면서 “피터 현은 호주에서 열린 각종 콘테스트를 통해 춤과 노래 실력이 검증된 스타”라고 설명했다.

11세 때부터 각종 댄스 경연대회, 라이브 콘서트, 뮤직 비디오 등에 100여 차례 출연한 피터 현은 현재 시드니의 뉴타운 공연예술고교에 재학 중.

춤에 가장 자신이 있다는 피터 현은 시연회에서 다른 주연급들의 발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고속 탭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안무를 맡은 서병구는 “피터 현은 탭댄스 외에 재즈 댄스, 발레 등에서도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여줬다”며 대견해 했다. 태어난 지 몇 개월만에 호주로 건너간 것에 비해서는 우리말이 무난한 피터 현은 “대형 뮤지컬을 통해 운좋게 한국에 데뷔했으니 계속 고국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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