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中자본주의 멤버로/下]한국기업의 명암

  • 입력 2001년 7월 11일 18시 33분


제네바에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확정된 3일 때마침 베이징(北京)에서는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 주재로 전국외자(外資)공작회의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서 주 총리는 “외국자본 유치를 기업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 나서서 ‘소프트한 투자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의 기능도 대폭 개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외국기업들이 중국에 직접투자한 금액은 624억달러였다. 98년에는 521억달러, 99년에는 412억달러로 90년대 중반 이래 대체로 매년 500억달러 이상을 기록해왔다.


외국투자기업들이 중국의 총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선이다. 중국 남부 광저우(廣州)에서는 외국 투자기업이 시 전체 공업 총생산액의 47%, 수출액의 65%를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 고용인구의 35%를 점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기업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주 총리가 다시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이종일(李鍾一) 베이징무역관장은 “외국자본의 중국 진출은 중국이 국제시장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외국기업들이 투자해 생산한 제품들은 결국 중국이나 해외시장에서 한국제품과 맞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 싣는 순서▼


上 구조조정 태풍
中 제도의 세계화
下 한국기업의 명암

WTO 가입과 함께 외국자본의 대중국 투자진출은 급증할 전망. 그동안 중국 진출을 가로막아왔던 각종 비합리적인 제도와 관행이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존 제도와 관행에서도 투자환경면에서 한국보다 좋은 점수를 받아왔다.

신화통신은 4일 한 외국평가자문기관의 조사를 인용해 비즈니스 비용과 난이도에 따라 확정한 아시아 각 지역의 ‘비즈니스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싱가포르가 1위였고 이어 말레이시아 태국 일본 중국 순이라고 전했다. 이 평가에서 한국은 대만 인도네시아에 이어 9위를 차지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달말 ‘중국이 몰려온다’는 보고서에서 향후 10년 안에 중국이 전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베이징에 진출한 한국상사 주재원이나 투자기업인들은 “중국의 WTO 가입은 한국으로서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WTO 가입이 확정된 이후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상사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상사들은 수출입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진출 기업들은 중국시장에 일어날 변화의 바람을 분석하기에 분주하다.

중국시장 진출이 ‘땅 짚고 헤엄치기’ 같던 시절을 다 보내고 시장 분석에 바쁜 주재원들이 이따금 ‘남대문표와 울시’ 이야기를 꺼낸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의류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남대문표’의 값싼 의류 보따리가 대거 중국으로 흘러든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남대문표’는 한국의류가 싸구려라는 이미지만 심어준 채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고기술 고가격 정책으로 중국시장에서 정식 승부한 대우 중국법인의 하이파이브가 만드는 고급 골프의류 울시가 최고 인기를 누린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와 모니터, LG전자의 전자레인지와 에어컨, 제일제당의 햄 소시지와 농심의 신라면 등이 인기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바로 기술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런 점에서 중국에 진출한 상사나 기업들 사이에서는 앞으로 중국시장을 파고들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진기술을 가진 외국기업들이 다투어 중국시장에 진출하면 한국기업과 제품이 설 땅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중대사관 박수훈(朴秀勳) 상무관은 “중국의 WTO 가입은 우리에게는 기회라기보다는 도전”이라며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하루빨리 바꿔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수출시장 투자진출시장만이 아니라 막강한 경쟁 라이벌로 보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 자원수입시장, 경제 파트너로서의 분업과 협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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