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탤런트 류시원

  • 입력 2001년 7월 11일 18시 53분


나는 1994년 KBS 미니시리즈 ‘느낌’으로 TV에 데뷔했다. 미대에 다니던 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연예인이 되어 보라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보긴 했지만 그림에 빠진 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으로 죽마고우인 김원준이 가수가 된 뒤 나에게 연예인이 되어 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농담으로 듣고 지나쳤다.

당시 김원준 소개로 알게 된 작곡가 김형석씨가 미니시리즈 ‘느낌’의 음악을 맡으면서 연출자 윤석호PD로부터 ‘신인을 출연시키고 싶다’는 말을 듣고 나를 추천했다.

나는 ‘밑져야 본전 아니냐’는 주변의 권유에 떠밀려 윤PD 앞에서 오디션을 봤다가 바로 발탁됐다. 느낌이 좋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때 맺은 윤PD와의 인연은 계속돼 그가 만든 드라마에 내가 출연한 것은 ‘프로포즈’와 ‘순수’까지 3편이 된다. 윤PD는 그가 연출을 맡은 ‘가을동화’에서도 내게 캐스팅의사를 밝히셨는데 다른 스케줄 때문에 출연할 수가 없었다.

‘느낌’에는 손지창 김민종 이정재 등 인기 청춘스타들이 총 출동했다. 내 배역은 이본을 짝사랑하는 손지창의 친구로 조연이었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해냈는지 ‘느낌’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드라마 ‘창공’의 주인공 역을 해달라는 섭외가 들어왔고, 나는 내 인생의 항로를 연기자로 굳혔다.

가끔 후배 연기자들을 보면 무엇을 찍으러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매니저에게 끌려 다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적어도 내가 왜 무엇을 하는지는 자신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데뷔 후 4년 간 매니저는 물론 코디네이팅, 메이크업, 운전까지 혼자서 다 했다. 지금도 코디네이터와 로드매니저만 두고 있을 뿐이다. 그게 더 편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그런 선택이 드라마 대본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방송의 구조를 이해하며 수많은 연예계 인사들을 사귈 수 있게 한 지름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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